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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un 06. 2021

속고 넘어가고 싶은 말

나는 엄청난 겁쟁이라서 거절당하는 것도 두려워한다.  거절한다는 것은 나 자체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조금 아플 때가 있다. 그게 싫었다.


하루는 그런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대화를 하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나처럼 거절당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웠고 또 안쓰러운 마음에 '그럼 우리끼리는 거절당해도 마음 아파하지 말자. 진짜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 친구는 '거절하지 않을게'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 말이 거짓임에도 상관없었다. 아니 사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알고 있었고 또 어쩌면 그냥 지나치는 말로 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단단한 말들은 항상 나를 붙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다 알면서도 속고 넘어가고 싶은 말들이 있다. 오래오래 함께 살자 라는 말이라던지, 영원히 사랑해라는 말이라던지, 절대 너를 미워하지 않을게 같은 말들. 또는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라는 말도. 우리는 절대 영원히 함께 살 수 없음을 알고 있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람의 감정은 누구도 알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또다시 기억은 미화되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싶은 것들. 그런 말들이 있다. 그럴 땐 그냥 속고 넘어가면 된다.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으리라 믿으면 된다. 나중에 훗날 그때마저도 거짓이었을까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사탕 발린 말이라도 좋으니 나를 예뻐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내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면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엇보다 내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무엇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설령 나 자신이라 해도 말이다.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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