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문동은 친숙한 동네는 아니다. 내가 태어난 곳도 아니고, 잠깐이라도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문동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들어본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문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년 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는 팀별로 학교 주변의 것들을 조사해오는 것이었다. 우리 팀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쓰레기를 주제로 학교 주변을 조사해야 했다. 그때 당시 이문동은 한참 재개발로 인해 시끄럽던 때였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았고 동네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와 팀원들은 별 고민 없이 이문동으로 향했다.
달동네는 태어나서 처음 가봤다. 내가 살던 곳은 언덕이 이렇게 높지도, 계단이 이렇게 많지도 않았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것들이었다. 뭐랑 비슷했냐면- 그래.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보여주시던 <난쏘공> (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드라마에서 본 곳과 비슷했다. 그렇게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공간이었다.
동네는 이미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대문 앞에는 스프레이로 공가라고 적혀있는 곳이 많았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새것으로 보이는 머리띠들이 있었다. 그 머리띠들은 몇몇 개씩 똑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아 머리띠를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의 집이었나 보다. 사랑받는 아이였겠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같은 팀원이 '머리띠 부업하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팀원의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좋아하던 머리띠라면 이리 버리고 갔을 리는 없었다.
더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지막 맨 꼭대기 집이 나왔다. 그 집은 대문 대신 비닐 같은 것으로 문을 막아두고 있었다. 비닐은 투명했는데, 그 사이로 휠체어가 보였다. 그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망치로 때린 기분이었다. 온몸에 털들이 삐죽삐죽했다. 나는 두 다리로 이 언덕을 올라오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휠체어를 써야 하는, 그 휠체어를 들고 여기까지 왔어야 하는, 그리고 그 휠체어를 버리고 갔어야 했던 그 사람이 떠올라서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휠체어를 여기까지 가지고 올라오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상상이 됐다.
이 이야기는 2년 전 이야기이다. 이런 생각들을 했던 이곳은 모두 없어졌다. 어쩌면 치워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쓰레기도 그렇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선생님이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님을 만났다고 하셨다. 국어 선생님께서, '선생님. 저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더니, 작가님이 자신의 작품이 아직까지 읽히고 공감이 된다는 게 부끄럽습니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기억입니다.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 찍어두었던, 그리고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2019년의 이문동
2020년의 이문동
2021년 외대역에서 이문동
*그때 써둔 블로그를 함께 읽어보세요
한예종 미술원 뒷동네, 이문동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