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자원봉사에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은 방학 때만 되면 어학 공부에, 자격증 공부에 이런저런 것들을 하는데 또 이리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버릴까 싶어 뭐라도 해보자 생각해 넣어본 것이었다. 게다가 서현은 남들보다 시작이 늦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마음이 붕 떠있던 건 분명 하나,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해보자 싶었다. 서현은 생각했다.
요즘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선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고, 면접도 봐야 했다. 봉사하는 것도 참 힘들구나 생각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게 낯설었다. 서현이 알고 있는 봉사활동은, 그저 자신이 찾아가기만 하면 누군가가 반갑게 맞이하고 또 거기에 가볍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학력란이 있는 걸 보곤 의아했다. 왜 학력이 필요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래 뭐 소속이 궁금한가 보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적어냈다. 그렇게 서현은 면접장에 섰다. 자기소개를 내뱉자마자 아- 이서현 씨. ㅇㅇ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서현은 기껏 열심히 자기소개를 했건만, 그저 자신은 ㅇㅇ대생으로 정의되는 건가 싶었다. 이상했다. 대학을 언급하지 않으려 일부러 과만 소개했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나열했고, 이 봉사활동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것인지- 등등의. 사실은 100퍼센트 진심은 아닌 그런 말들을 내뱉었건만 결국 돌아오는 건 이서현. ㅇㅇ대 대학생.이었다.
서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럴라고 이 대학에 오고 싶었던 건 아닌데' 생각했다. 삼수였다. 재수를 할 땐, 그나마 고3 시절을 같이 보내던 친구들과 함께였다. sns에 끊임없이 올라오던 새내기 친구들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이 박탈감과 우울함을 함께 견디던 친구들이 있어 버틸만했다. 그리고 삼수를 결정할 땐, 그래 그땐 아무도 서현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서현 역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에 그런 것들은 다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삼수를 하고 붙은 대학은 서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서현은 이 정도면 됐다. 싶었지만 서현의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서현은 그 학교에 붙은 것만 해도 지겨운 수험생활이 끝났구나 싶어 내심 기뻤다. 서현은 수험생활 내내 자신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합격은 서현이 대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식탁에 앉았는데, 서현의 부모님이 서현이 밥 한 숟가락을 뜨자마자 '편입 준비해라'라고 말했다. 서현은 그냥 밥을 먹었다. 자신이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그 자리를 뜰 수 있음에 다행이다 생각했다.
서현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다시 학원에 갔다. 그렇게 서현은 ㅇㅇ대 생이 되었다.
처음 ㅇㅇ대를 합격했을 때, 몇 년간 어딘가 붕 떠있던 몸과 마음이 드디어 완벽히 정착한 기분이었다. 서현은 이제서야 부모님과의 식사가 편했다. 대학을 가느라 써야 했던 20살부터 24살이 통째로 도려내진 느낌이었다. 서현은 애써 무시했다.
서현의 친한 언니는 취업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언니였다. 언니의 회사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원이 있었다. 언니의 말로는 사람들이 자꾸만 그 직원을 은근히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글쎄.. 걔가 과연 이화여대 법학과를 나왔으면 사람들이 지금이랑 똑같이 대할까?' 하는 것이다.
서현은 언니가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것에 대해 묘한 허무함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은 대학을 위해 몇 년을 도려낸거같다고 느꼈으면서, 자신을 ㅇㅇ대 생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에 무력함을 느꼈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ㅇㅇ대 생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사회에 나가면 그래도 그만큼 무시당하진 않겠지. 싶은 생각이 스쳤다. 서현은 소름이 끼쳤다.
*이번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