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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향 Apr 26. 2024

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문예반 아이들 1


“얘들아, 예술가는 누구나 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란다. 그게 우리의 목표야. 예술을 사랑하면 마음에 크고 풍부한 세계를 하나 더 가지는 거란다.” 그렇게 중학교 문예반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해, 한 주에 한 시간이던 특활시간을 모아서 토요일 네 시간으로 모아서 한 달에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아마 전국에서 처음일 것 같은데 한 시간으론 언제나 시작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쉬웠다. 아이들에게 머리를 쥐어짜다가, 놀다가, 그림 한 장, 작은 글 하나를 완성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1,2학년을 다 모아서 겨우 18명이 왔다. 그나마 반은 문예반스러운 얼굴들(이런 게 있다!)들이고 나머지 반은 뿌루퉁하니 왜 여길?하는 표정이었다. 왜 여기 왔냐고 물어보니 인기있는 탁구반, 축구만, 수영반, 배드민턴반 다 가위바위보에서 지고 구석으로 밀려온 거였다.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 문예반은 글을 안 쓸 거라고 말해주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에게 “글이란 단지에 가득 담긴 물처럼 내면에서 흘러나와야 하는 거야. 그러니 우리는 바가지를 들고 단지에 물을 담으러 다닐 거야. 우물은 미술관, 박물관이야. 그래서 우린 학교 밖에서 만날 거야.” 대구문화예술회관, 박물관 그리고 큰 이슈가 있는 전시들을 찾아 다녔다. 그 당시 대구에 대형 기획전이 많았다. 진시황 병마용전. 몽골유물의 최초 해외 전시도 대구에 왔다. 피카소도 있었다. 음악회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음악회는 시간도 늦은 데다가 입장료 지원도 받을 수가 없어서 실행을 못 했다.     


수성구에서 문화예술회관을 찾아오는 게 검색도, 버스 전광안내판도 없고 집집마다 차도 없던 시절에 중학생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9시에 모이라고만 했다. 대신 두어 가지 규정을 만들었다. 교복 입고 오기 없기, 가진 옷 중에서 특이한 조합으로 입고 오기, 새옷을 사면 반칙! 고민고민한 아이들 중에 양말을 짝짝으로 신고 오거나 이상한 목도리를 두르고 온 애들도 있었다. 오호, 새로운 패션인데? 하고 무조건 감탄해 주었다.     


입장시간이 되면 문앞에서 “마구 뛰어서 작품 앞을 지나가지 마라. 이 작품들은 작가들의 영혼, 시대의 영혼이다. 의미는 몰라도 괜찮아, 그냥 이건 뭘까? 스스로에게 질문만 던져 봐.”하고 얘기해 주었다. 작품에 대한 안내도 질문도 안 했다. 아이들은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자유롭게 다니기 시작했다. 궁금해서 브로셔를 찬찬히 읽어보는 학생도 있고, 가만히 서서 아무 것도 안 보는 얘도 있었다. 늦게 와도, 아무 것도 안해도 누구도 혼내지 않았다. 혼나는 거라면 학교 안에서 충분히 해 본 애들이 반은 되니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학교 생활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결석은 하지 마라. 학년 못 올라간다.”고 엄포는 놓았지만.      

전시장 가운데 서 있는 나에게 달려와 “선생님, 저 고등학생 형들이 막 뛰어 작품 앞을 지나가요.”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그러네, 굉장히 교양 없어 보이지?”라고 대답해주고. 또, 달려와서 내 손을 잡고 작품 앞에 가서 “선생님, 이 작가는 평화주의자 같아요.”하길래 보니 피카소의 엠네스티 포스터였다. 사람은 철창 안에 비둘기는 철장 밖에 있는 그림을 자세히 얘기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기특하기도 해라!

이듬해 문예반 재미있다고 소문나서 38명이 왔다. 영업이 성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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