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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향 Apr 26. 2024

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문예반 아이들 2


“ 조선생님, 오늘 인터넷에 선생님 기사 났어요. 대단하신데?” 어느 해 스승의 날 아침, 출근하니 음악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다. “예? 제가 왜요?” 놀라서 검색해 보니 문예반 아이 중에 기자가 된 졸업생이 ‘보고 싶은 조미향 선생님’이란 글을 올렸다. 이름이 어느 전직 대통령과 거의 비슷해서 금방 생각이 났다. 희한한 게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아이의 등과 고요함이 기억났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국어수업을 한 아이. 읽어보니 대개의 기억이 그러하듯 중학교 기억과 고등학교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그의 기억은 이랬다.     


5월에 경주박물관에 갔는데 부모님 없아 시외버스를 처음 타 본 것, 선생님이 아무 설명도 없이 문앞에서 ‘보고 싶은 거 보다가 몇 시까지 여기 다시 모여라.’ 그러고 마음대로 가게 했다는 것, 확 놓여나니 당황해서 어쩌지.....하고 걸어가다가 에밀레종에 맞닥뜨린 것, 그 시간이 보여주는 무게감에 엄청나게 감동했고 왜 선생님이 우리를 여기에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는 것 등. 


사실 이 일은 10월 1일이었다. 학교일, 가정살림, 그림 그리는 일을 동시에 하느라 누구에게도 시간을 야박하게 안 내어주고 살던 시절이었는데 이 아이들에게는 나의 하루를 주고 싶었다. 고속버스로, 다시 시내버스로 경주박물관 앞에 내렸다. 나의 기억은 그 너른 들에 황금빛으로 한껏 빛나는 벼의 물결로 남았다. 박물관에서 나와 선재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김밥도시락을 함께 까먹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선재미술관 보고 돌아왔다.     


어떤 수업에서 내가 “지금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하는데, 마흔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 같은지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 기억을 그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인생이 스물일곱 쯤 되어서 각자 길이 달라진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 학교를 그만둔다고? 어떻게 되는 거지? 고민하다가 ’가출해서 방황하다가 먹고살 길이 막연해서 농촌으로 가 날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동네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빈집을 얻어 동네처녀와 조금 늦게 결혼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그냥저냥 살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엄청난 성공담, 무용담을 써낼 것 같은 나이에 그 아이의 삶에 대해 가진 실체감, 겸허함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읽히고 마구 웃으면서, ”얘, 너 웬만한 신문 연재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썼네. 너무 재미있어!“


그는 나의 폭소와 칭찬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글을 써 본 것도,누가 내가 쓴 글에 이렇게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받은 것도 처음......그때부터 죽어라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아버지에게 혼났을 때, 누나들과 싸웠을 때, 무언가 기억하고 싶을 때, 듣기만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내 말‘을 하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그는 글쟁이가 되고 잡지사 기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의 눈길을 쏟고 그들의 글을 출판해 주는 일,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15년이나 지나서 선생님이 제게 해 주신 일이 뭐였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 아이는 딸 둘을 낳고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내가 집 사러 이 지구에 왔냐‘고 툴툴대며 힘들어하고, 자꾸 배 나온다고 걱정하면서도 식욕 넘치는 가장이 되었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생에 대한 느낌을 쓰고, 그것이 그의 삶의 자세였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과장하지 않는 겸허한 삶, 생각을 실천하는 성실하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그의 전화번호는 내게 ’민중대통령 ㅇㅇㅇ‘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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