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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향 Mar 25. 2024

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문을 열어야 나갈 수 있다

 

                                                                                                                        조미향


 ‘프리즈 2023’과 ‘키아프’를 다녀왔다. 이틀의 일정으로는 도저히 다 소화해낼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면서, 지난해 처음 ‘프리즈 서울 2022’가 열렸을 때와는 좀 다른 인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페어가 우리 앞마당으로 왔다는 기대감, 혹은 한국시장에 발을 내딛는 외국 화랑들의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되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훨씬 차분해졌다는 느낌이었다. 실험적 작품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시장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 이유인 것 같았다. 좀더 대중적이며 팔기 쉬운 작품들이 많이 보여서 2022년보다 얌전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람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프리즈에는 36개국 7만여 명, 키아프는 8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페어장 어디에서나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일반 관람객들도 세계적 작품들 속에서 미술의 향연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어떤 부스들은 40분씩이나 줄을 서고 안전을 우려하여 안전요원을 배치한 화랑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행사장인 코엑스를 넘어서 서울 전역에서 ‘미술 축제’가 열려 그야말로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된 ‘예술도시 서울’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국내외 컬렉터들과 미술관 관계자들이 서울 시내 곳곳의 미술관과 파티장에서 인적 교류를 넓히고 서로의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만남의 자리는 한국미술과 한국작가들에게 세계로 나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처음 프리즈가 열릴 때 국내미술 시장은 몹시 위축되면서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내 앞마당에 자리를 펴주고 외국화랑 장사를 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때 1998년 무역시장의 공정개방 논리에 따라 영화시장 개방도 결정해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외국영화를 상영할 때 한국영화를 일정 기간 상영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1966년에 입법화된 스크린 쿼터제였는데 헐리우드 영화의 물량공세에서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만든 제도적 장치였다. 그때 100여 명의 배우들이 삭발을 하고, 해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뱀까지 풀어놓는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대미무역 개방의 압력 속에 개방은 강행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세계의 영화계에 문을 열고 나서 한국영화는 세계와 경쟁하면서 국제무대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일본대중예술 개방 때도 그러했다. 일본의 대중가요와 게임, 만화시장에 한국시장이 잠식될 거란 우려가 높았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그리고 세계와의 경쟁 속에서 강인해진 한국 대중예술은 수많은 ‘봉준호’와 수많은 ‘BTS’를 세계무대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한국예술은 스스로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도 클래식 음악도 발레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같은 문화적 유전자를 가진 한국미술가들이 그렇게 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나가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을 열 때 훅 들어는 바람을 두려워해서는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제 한국문화의 컨텐츠들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데 유독 미술시장만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서울이, 한국이 문을 열고 아시아 미술허브의 장을 만들고 있으니 다른 한국예술과 마찬가지로 그 문으로 한국미술이 세계무대로 나가리라고 기대한다. 국내 어떤 도시보다 뛰어난 미술작가가 많은 나의 도시 대구도 그 시장의 일원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예술생태계에 물을 주고 나무를 키워내는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명품가방을 사는 것은 예술행위가 못 되지만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작품은 사는 당신은 예술계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작품을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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