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사짓는 뚱여사 Oct 23. 2022

젊음과 늙음 사이 어디쯤에서

언젠가부터 운전을 할 때 앞차의 브레이크등의 번짐이 심해지고 예전 같으면 또렷하게 잘 보였을 달력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오래 보는 습관 때문에 시력이 안 좋아지는구나 싶었다. 결국 보다 못한 딸내미 손에 이끌려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했는데, 안경사 선생님이 가장 먼저 뱉은 말은

"노안으로 시력이 떨어지셨고요, 난시도 좀 심하시네요!"


'노안이라니!'

 내가 비록 흰머리가 좀 있고 햇볕 아래서 농사일을 하느라고 기미 주근깨도 좀 있기도 하고  얼굴은 검게탔기는 했지만! 아직 오십도 안된 우리 동네에서는 가장 어린 쪽에 있는 청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예고편도 없이 내 인생의 청년시대가 갑자기 막을 내려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  내가 동경하던 젊음의 패션인 청바지에 워커부츠, 버킷햇 쓰고 폭넓은 치마바지에 가죽재킷도 입고 밖에 나가지도 못해봤는데,

내 젊음의 시간을  흙 묻은 장화와 어느 나라패션 인지도 모르겠는 냉장고 바지, 오로지 햇볕 차단을 목적으로 쓰고 다니던 작업 모자로 채워 넣고 이렇게 이번 생의 젊음이 끝난다는 말인가?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은 젊음과 늙음 사이 어느 곳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혼란의 시간이 며칠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진도읍 오일장의 시끄러움 속에서 고등어를 사고 쪽파도 몇 단 사서 파김치를 만들 궁리도 하고 따끈한 두부도 사고, 모시조개 몇 그릇에 기분이 좋아져서 막 읍장을 벗어나는 길목이었다.

힘겹게 지팡이에 두 손을 의지하신 할머니 한분이 그 자리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숨과 함께 내뱉으시는 한마디가 내 귀속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오기는 했는데, 이제 어뜩케 집에 갈꺼나!"

할머니의  손에 든 것이 지팡이뿐인 것을 보아하니 이제 막 장에 도착하신 모양이었다.

힘들게 읍장까지 오기는 했는데, 빈손으로 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장에서 물건들 사고 집에까지 다시 돌아가실 생각에 아득해지신 모양이었다.

요즘은 노인들을 위해 나라에서 전동차도 주고 부름 택시로도 노인들의 이동이 편리하도록 해준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복지가 할머니에게 까지 손에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할머니의 걱정이 머리에 박혔지만,

'힘드셔서 어떡하시지.... '그런 걱정만  그 자리에 놓아두도 올 뿐이었다.


할머니 걱정을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노안으로 시력이 조금 나빠졌다고 젊음이 끝난 것처럼 굴던 내 푸념과 한숨은 흩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솜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두발로 있는 힘껏 뛰어다니던 그렇게 아름답게 빛이 났을 청춘이, 지팡이에 의지해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면서도 거친 숨으로 걸어야 하는 그 외롭고 허망하고 서글펐을 그 시간들을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진짜 늙음의 'ㄴ'자도 모르면서 감히 그 서글픔을 이야기하려 했다니.... 얼마나 같잖은 짓이었나 말이다.

얼굴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언젠가 내게도 버거울 만큼 무겁고 외로운 늙음이라는 그 시간들이 오겠지만, 그날을 미리 당겨 서글퍼하지는 말아야겠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청바지를 입고 워커부츠에 버킷햇을 쓰고 거리를 다니는 나를 상상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청춘을 조금 더 길게 늘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 패션의 완성은 다이어트라고 하지 않았던가? 살부터 먼저 빼고 시작해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