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29

by 이종열

《달항아리 연재29》


보석함의 가치는 안에 담긴 보석에 값어치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남루한 겉모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보물이 담겨 있다면 명품입니다. 반대로 보석함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안에 담긴 물건이 허접하면 그 가치는 떨어집니다.

우리는 익히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꿔 입은 옷으로 졸지에 왕자와 거지가 바뀝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타인의 눈빛에 바뀐 것입니다. '이서방, 옷을 잘 입어야 돼. 입은 거지가 밥 얻어 먹는다네' 장모님은 지금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십니다. 허름한 사위의 옷차림이 걱정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월이 오래되면 명품이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는 그 연수에 비해 그다지 높은 가격을 매기지 못합니다. 오히려 현대의 명품들에 더 높은 가격 매겨집니다. 지금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들은 처음부터 명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보석함에 담기든지 내용물이 보석이면 명품입니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은 고급품'입니다. 처음엔 패션 아이템을 지칭했지만, 이제는 자동차, 음식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명품의 조건은 '백화점 명품관 입점', '높은 가격대', '희소성', '디자인', '역사', '품질' 등입니다. 장인의 수제작과 엄격한 품질 관리로 탄생한 명품은 소유자의 부와 품위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품 선호에는 네 가지 심리가 작용합니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 남들을 따라 구매하는 '밴드웨건 효과', 희소한 것을 추구하는 '스놉 효과', 그리고 같은 제품을 쓰는 이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파노블리 효과'입니다."


달항아리 연재에 웬 명품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달항아리는 명품일까요?"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입니다. 정답을 말씀 드리자면 달항아리는 그 시대에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앞선 연재들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달항아리는 조선 왕의 그릇인 백자 중에서 가장 큰 백자입니다. 전국에서 최고의 백토를 채굴해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분원의 가마로 옮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도공들이 최고의 기술로 만든 것이 바로 달항아리 입니다.

백토 채굴에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습니다. 그 일은 왕의 관심사였습니다. 채굴 과정에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 지역의 수령과 백성들에겐 큰 골칫덩이였습니다.

주로 뱃길을 이용해서 백토를 옮겼습니다. 진주 백토, 곤양 수월토, 하동 백토는 사천만의 뱃길을 통해 천리길을 운송해야 했습니다. 흙을 정제하고 수비하고 굽는 그 모든 과정에 많은 기술자가 투입되었습니다.

그 당시 달항아리 가격이 얼마일까요? 사고 팔지 않아서 그 가치를 매길 순 없습니다. 현 시세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누구도 정답은 모릅니다. 최근 해외 경매에서 41억에 낙찰되었고, 최고 경매가는 60억이었습니다. 달항아리 만들어진 당시 가격으로 매기면 적어도 현대의 경매가는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가격이었을 거라 추측됩니다.

백자는 임금만의 그릇이었기에 일반 백성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달항아리를 돈많은 부자가 사용할 수 허락되었다 하더라도 임금 외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불량품으로 나온 달항아리도 쉽게 깰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 작가들 중에 "더 좋은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서 깬다"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이 퍼포먼스가 어떻게 보이나요?

분원의 가마에는 파기장이라는 도공들이 있었습니다. 이 도공들은 예술적 가치를 따져서 좋은 것만 골라내는 심미안적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쓸 수 없는 백자를 골라내 깨서 버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파기장들이 어떤 백자까지 남기는지 바로미터의 달항아리입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불합격품이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더 특별한 가치로 빛납니다.《선입술 올록볼록 계란달항아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둥글둥글 둥글게 살자

살면서 바람 든 풍선을 터뜨린

뾰족한 바늘이 환영 받은 때가

몇 번이나 있던가

완벽한 구형일 필요는 없다

죽자고 달려 드는 중력에

맞설 만큼이면 된다

모든 물방울처럼

적당히 둥근 감처럼 양옆에서

눌린 타원형 달항아리처럼

둥글둥글 둥글게 살자

처음부터 둥근 것은 없다

둥글어지리라는 의지와

수만 번의 지극정성에

둥글어 진다

모난 것들은 모른다

둥글어지는 게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둥금이 순리라는 걸


이 달항아리는 높이 50cm, 몸체지름 43cm, 입지름 21.5cm, 밑지름 21.5cm입니다. 굽 위쪽에 올록볼록하게 물결이 칩니다. 몸통에 이어붙인 흔적이 선명합니다. 또 한쪽면이 줄어들어 붙인 부위가 기형적입니다. 현대적 시각으로 접근했다면 이 달항아리는 파기장의 손에 깨져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 남았습니다. 비싼 달항아리는 생긴 모양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선입술 올록볼록 계란달항아리는 18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입술은 길게 세워져 있으며, 굽은 낮습니다. 계란 모양의 타원형이지만 입지름과 굽지름이 같아서 자연스럽게 균형미가 풍겨져 나옵니다.

몸통중앙에 아래 위를 이어붙인 접합부가 언밸런스하게 붙었습니다. 유약은 두껍게 고루 발라져 있으며 매끈한 피부를 가졌습니다. 하반부에 움푹 들어간 부위로 인하여 올록볼록한 형태를 띱니다. 완전하지 않기에 더 정감 어린 달항아리입니다.

약점이 많은 달항아리이지만 여전히 명품입니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달항아리의 역설입니다.

해아래 완벽한 원형의 달항아리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달항아리는 찌그러지고 어그러지고 뭔가 부족한 열 나흘 달의 모양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당신도 나도 우리는 모두 불완전의 달항아리입니다. 도토리 키재기 하듯 남보다 잘났다고 우쭐할 일이 아닙니다. 또 남보다 못났다고 실망할 일도 아닙니다.

《선입술 올록볼록 계란달항아리》는 오늘도 침묵속에 웅변하고 있습니다. '보물함의 가치는 담긴 내용물에 따라 결정된다'고. 우리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대체불가한 명품 달항아리입니다. 마음에 새기고 한순간도 잊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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