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화병

by 이종열

까치꽃 피는 봄이다

화병에 매화를 꺾어

꽂으려다 멈춘다

곧 지천이 꽃밭일터

굳이 화병에 꽂으랴

그래서 오늘도

청자화병은 논다


굽이진 사슴 목덜미에

매화 한 가지 걸치지 않아도

청자의 푸른 몸 속엔

이미 봄바람이 일렁인다

​꺾지 않은 꽃은 뜰에서 웃고

비워둔 화병은 방 안에서 피니

내 마음 한 자락에

매화 향기로 고인다



오늘도 나는 비움으로 봄을 품는다

​어느덧 창밖은 매화 향기가 담장을 넘는 시절이다.

가지 하나 꺾어 저 청자의 목에 걸어주려다, 문득 멈춰 선다.

​손 안의 꽃가지 하나로 봄이 앞당겨 지지 않는다.

곧 봄의 창이 활짝 열리면 온 세상에

거대한 꽃물결이 넘실거릴 것이다.

허공에 ​내 손길이 멈춘 자리,

제 몫의 꽃을 얻지 못한 청자화병은 여전히 자유하다.

온 몸에 꽃을 두르고

입구가 꽃잎 모양(花口)으로 빚어졌으니,

꽃을 품지 않아도

제 스스로 이미 한 송이 꽃으로 핀다.

​가지 끝에 맨 먼저 맺힌 매화 한 알의 미소로

이 작은 화병은 비워진 채로 더욱 넉넉해진다.

'함께 노니는' 법을 아는 봄꽃이여,

​내려 놓음으로 지천의 꽃밭을 다 가졌으니,

청자의 비색(翡色)은 꽃보다 푸르고,

그 여백은 향기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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