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에 안착한 16개의 우주 1》

활자의 골격과 사유, 십구사략통고

by 이종열

책장을 펼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판면의 질서다. 칸이 나뉘고, 행이 곧게 서 있고, 글자들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박혀 있다. 이것은 손으로 쓴 글이 아니고, 목판에 새긴 글도 아니다. 금속이 찍어낸 질서다.

조선 초기, 세종의 명으로 주조된 경자자는 단순한 인쇄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지식을 어떻게 배열하고, 어떻게 반복하고,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설계한 장치였다. 활자를 만든다는 것은 글자를 찍겠다는 뜻이 아니라, 판단의 틀을 고정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 배경에 ‘사략(史略)’이 있다.

사략은 방대한 중국 정사를 요약해 놓은 책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한 권 안에 압축한다. 왕이 참고할 사례집이자, 신하가 배워야 할 통치의 기준이었다.

십칠사략과 십팔사략이 송대까지의 사례를 묶었다면, 십구사략통고는 그 범위를 원대까지 넓힌다.

조선이 이 책을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것은 단순한 출판이 아니다.

그것은 “여기까지를 우리의 교훈 범위로 삼겠다”는 국가적 선택을 금속으로 굳힌 사건이었다.

경자자는 자폭이 좁고 획이 단단하다. 처음 보면 조금 빽빽하고 투박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미완이 아니다.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한 선택이다. 한 행 안에 최대한 많은 글자를 밀어 넣으려는 구조적 결단이다.

사진 속 판면을 보라. 글자는 서 있고, 칸은 좁고, 여백은 얇다. 숨이 차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경자자의 골격이다.

현재까지 《십구사략통고》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조선 전기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판면은 기술사적·사상사적 의미를 지닌다. 달정원 소장의 경자자본 권2 역시 그 체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실물이다. 전질이 아니라 낱권일지라도, 판면 구조와 활자의 밀도만으로 당시의 설계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본은 권당 1책으로 분책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권2 역시 그 관행과 맞닿아 있다.
본문이 국가의 질서라면, 여백은 개인의 자리다. 활자는 질서를 찍어내지만, 여백은 사유를 허락한다. 서두의 ‘수기방심(收其放心)’은 마음을 거두어 집중하라는 말이다.
활자가 정렬된 판면 위에서 독자는 마음을 바로 세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마주하는 ‘ㅇ奉始皇帝’.
ㅇ’ 자는 익숙하지 않다. ‘幸’에 ‘辶’이 더해진 이체자다. 정형화된 옥편의 틀에서 살짝 벗어난 모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진 이 글자가, 이 판면 위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국가가 질서를 금속으로 고정했다면, 이 이체자는 그 질서를 읽는 개인의 미세한 흔들림이다.
시간을 건너온 기록이 지금 눈앞에 도달했다는 작은 전율이다.
활자는 차갑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서 지식은 구조를 얻는다. 세종은 세계를 활자로 고정했고, 독자는 그 고정된 질서를 자신의 사유 안에 안착시켰다.
조선은 알고 있었다.
역사는 많이 아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교훈의 범위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도 이 좁은 자폭과 단단한 획 속에 남아 있다.
판면 위, 16개의 칸 안에.
여백 속에, 조용히 안착한 우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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