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으로 증명된 여백의 미학: 15세기의 데칼코마니
달정원이 소장한 《십구사략통고》 권 2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경자자 금속활자본이라는 기술사적 범주로는 이 책의 깊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은 15세기 조선의 독자가 책이라는 매체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수용을 넘어 주체적 개입이었음을 보여주는 실물 기록이다.
책장을 펼치면, 본문은 이미 완결된 질서로 서 있다.
곧게 정렬된 활자, 좁은 자폭, 계산된 행간.
판면은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고, 여백은 최소화되어 있다.
국가는 그 위에 판단의 틀을 세워 두었다.
이 구조는 흔들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선은 본문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위쪽 여백으로 이동하면, 기묘한 흔적이 나타난다.
먹이 번진 듯하면서도, 좌우가 거울처럼 마주 보는 대칭의 형상이다.
이 형상은 20세기 초 오스카 도밍게스(Oscar Domínguez)가 창안하고,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정립한 데칼코마니(Decalcomania) 기법의 원형을 보여준다.
데칼코마니는 종이 사이에 물감을 놓고 압력을 가해 접었다 펼 때 나타나는 우연적 형상을 활용한다. 작가의 붓질이 아닌, 압력과 점성이라는 물리적 조건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미학이다.
15세기 조선의 책 속 여백도 마찬가지 경로를 밟는다.
조선 한지는 치밀하게 도침(搗砧)되어, 먹을 머금으면서도 표면의 탄성을 유지한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가하는 미세한 압력과, 실로 묶인 선장본 특유의 장력이 종이를 중심선으로 살짝 접히게 한다.
그 찰나, 아직 마르지 않은 필사의 잔여 먹이 반대편 여백에 안착한다.
한쪽 면의 정보가 물리적 압력을 매개로 건너가, 대칭적 구조를 남긴다.
하지만 이 책의 데칼코마니는 단발적 우연이 아니다.
책 중간중간에 16번에 걸쳐 반복된다.
위치와 크기, 형상의 기본 구조가 유사하다.
이는 독자의 읽기 습관과 리듬이 책 속에 물리적으로 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복은 의지를 만들고, 의지는 형식을 만든다.
16개의 우주가 일정 궤도를 그리며 반복되는 동안,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든 먹은 단순한 얼룩을 넘어 의도된 질서로 격상된다.
회화도 장식도 아니다. 읽는 행위에 덧붙인 수행이자 실천이다.
그리고 마지막장.
대칭은 멈춘다. 한쪽만 남은 형상이 등장한다.
반복의 종결을 알리는 변화다.
20세기 예술가들이 우연 속에서 의미를 발견했듯, 15세기의 독자도 16번의 반복적 수행을 통해 사유를 정련하고, 마침내 대칭이라는 보조 장치를 버린 채 지식의 본질과 단독으로 마주 선다.
그 곁에는 옥편 규범에서 살짝 벗어난, 15세기에만 쓰인 독특한 필치의 글자가 놓여 있다.
‘ㅇ(체/행)’
정형화된 활자 질서 속에서 미세하게 다른 결을 지닌 획 하나.
활자가 만든 규범과 필획의 자유 사이의 작은 틈.
16번의 반복 끝에 남은 사유의 응결처럼 읽힌다.
본문은 국가가 설계한 지식의 구조이고,
여백은 개인이 머문 사유의 자리다.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활자는 지식을 고정하지만, 여백은 그 지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를 열어둔다.
이 책은 묻지 않는다.
조선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를.
대신, 마지막 여백에 남은 흔적으로 말한다.
이미, 그 경지에 다다라 행하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