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시퍼런 생존이 빚어낸 환상》

by 이종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마주한 풍경이 어찌 꿈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분명해졌다. 아련하지만 선명한 이건 꿈이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 서면 공기는 이미 분홍빛 입자로 포화된다. 그러나 이 만개는 시작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끝이다. 꽃은 피는 순간부터 동시에 지기 시작한다. 봄바람에 수천의 꽃몽우리가 하늘로 손을 벌릴 때, 그 사이로 첫 낙화의 궤적이 허공에 파동을 일으키며 팔랑거린다. 나비다.

본래 나비의 주무대는 만화방창한 여름과 결실의 기운이 도는 가을이다. 그러나 이 봄날, 벚꽃 가지에 내려앉은 저 나비는 다르다. 저것은 알과 번데기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성충의 몸으로 낙엽 밑과 바위 틈의 칼바람을 견뎌낸 생존자다. 그러나 그 생존은 정착이 아니라 소진이다. 나타나는 순간 이미 떠나기 시작한 존재다. 찢어질 듯 얇은 날개로 엄동설한을 통과한 존재가 피워내는 비행은 군무가 아니라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독무(獨舞)다.

나비가 꽃가지 위에 내려앉는 순간, 시각의 경계는 무너진다. 분홍의 군락 속에서 나비는 생물학적 정의를 이탈하여 가지 끝에 매달린 가장 동적인 꽃송이로 변한다. 피면서 동시에 지는 꽃과, 나타나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나비. 이 두 개의 시간은 충돌하지 않고 겹친다. 작년 가을의 기억을 품고 겨울을 건너온 ‘과거의 생명’이 이제 막 피어난 ‘현재의 꽃’과 맞닿는 이 지점에서, 꽃이 나비인가 나비가 꽃인가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미 그들은 물아일체의 영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비현실적인 조우는 기묘한 교차에서 완성된다. 벚꽃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생의 비상을 향할 때, 나비는 이미 그 반대 방향으로 소진을 시작한다. 상승하는 꽃의 운동과 하강하는 나비의 운동은 같은 순간에 발생한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이 고독한 퇴장은 지독하게 역설적이다.

이 봄나비는 다가올 가을나비를 위한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기 위해 제 몸을 던진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나아가는 생, 피는 순간 이미 지고 있는 꽃과 다르지 않다. 벚꽃의 시작과 함께 나타나 그 화려한 엔딩의 대미를 장식하고는, 미련 없이 나풀나풀 속세의 중력을 따라 떠나간다. 자신의 생을 온전히 녹여 다음 세대의 풍요를 기약하는 그 뒷모습은 숭고하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자비 없이 빛을 쏟아내고, 사물의 윤곽은 이토록 선명한데 정신만은 아득한 안개 속을 걷는 듯하다. 지독하게 사실적인 색채와 생존의 경이로움, 그리고 그 끝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소멸이 오히려 비현실감을 증폭시킨다.

분명 이건 꿈이다. 피면서 동시에 지고, 날면서 동시에 떠나는 이 찰나가 현실일 리 없다. 꽃잎이 지고 나비가 떠난 뒤에도, 시퍼런 대낮에 목격한 그 꿈의 잔상은 눈가에 남아 오래도록 명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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