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열여섯 명을 죽였다. 그리고 오늘 한 명을 더 죽일 계획이다. 김 팀장…… 나는 오늘 그 빌어먹을 자식을 죽일 것이다.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열여섯 명…… 그래, 벌써 열여섯 명.
사람을 죽인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살인을 계획하는 것부터 오랜 고민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죽여야 하나, 어떻게 해야 들키지 않을까?’
한 달 내내 고민했다.
살인 후에는 또 어떤가, 죄책감이라고 해야 하나,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나. 알 수 없는 그 기분 때문에 살인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처음 사람을 죽인 날 밤, 뉴스에서 살인 사건에 대한 속보가 나왔다. 앵커가 “살인, 살인” 하고 말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랐다. 살인의 ‘살’ 자만 들어도 자꾸만 항문이 움찔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걸 누군가 알게 될까, 내내 불안했다. 첫 살인을 하고 얼마 동안은 조마조마해서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한 달 동안 아무도.
그래, 내가 살인을 할 거라고 누가 알겠어? 상상 조차 못하겠지.
두 번째는 처음보다 훨씬 수월하고, 깔끔했다. 내내 전전긍긍하던 처음과는 다르게 살인 후에도 빠르게 마음을 추슬렀다.
이제 열일곱 번째 살인을 계획하는 나에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란,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컵 마시는 것처럼, 내 건강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됐다. 더 이상 나에게 처음에 느꼈던 두려움과 죄책감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나 무턱대고 죽이는 건 아니다. 나도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토익 점수도 900점대 초반을 받은 누구나 인정하는 지성인이다. 무 턱 대고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사이코패스와 근본부터 다르다.
나는 단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나를 무시하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특정한’ 사람만을 죽인다.
일종의…… 자기 위안적 복수랄까?
입사하고 나에게 처음 일을 알려 주던 두 살 어린 사수, 예비군에서 다시 만난 꼴통 군대 선임, 바람난 전 여자 친구와 그 개자식.
누구나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
오늘은, 김 팀장…... 그래, 나를 무시하고 내 자존심을 짓밟고, 매일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그 빌어먹을 자식.
지하철을 탔다.
오전 8시 40분 평소와 다름없이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8시 55분 사람들이 들어온다.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오전 9시 3분. 김 팀장이 들어온다. 빌어먹을 자식. 내가 3분 늦었으면, 3시간 늦은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망신 망신 개망신을 줬을 놈이다. 3분이나 늦은 주제에 저렇게 밝게 웃으며 들어오다니. 언제나 자신에게는 끝없이 관대한 놈이다.
그래 지금 많이 웃어둬라. 이 자식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기] 나 같은 회사원이 살인을 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철칙>이다.
만약 내가 오늘 8시 40분에 출근하던 평소와 다르 게 9시에 출근을 한다면, 후에 김 팀장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의 탐문 수사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날 뭐 이상한 건 없었나요? 평소와 달랐던?"
"음…… 오! 그 날 승훈 씨가 9시에 출근을 했어요. 그는 항상 8시 40분에 출근하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 9시에 오더라고요. 혹시…… 김 팀장님을 죽이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평소에 도 승훈 씨는 사람이 좀…… 눈빛이 이상하긴 했어요. "
그래. 절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야 한다.
오후 12시 10분. 오전 업무를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김 팀장과. 김 팀장과 먹는 마지막 점심이다. 함께 먹는 마지막 점심이라고 생각하니, 맙소사! 밥이 아니 라 이건 마치 꿀을 퍼 먹고 있는 것 같다. 달다. 달아.
[팀장님, 퇴근 후 오후 7시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옥상에서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김 팀장의 자리에 메모를 남겨 놓는다.
오후 3시. 그제야 메모를 본 김 팀장이 내 메모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오후 3시 30분 회의를 하러 가던 김 팀장이 나에게 '그러지'라고 대답한다.
김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메모를 주워 파쇄기에 넣는다. 이제, 김 팀장과 내가 만나기로 한 일은 아무도 모르게 된다.
오후 6시 30분. 부장이 일찍 퇴근한다.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 그제야 하나둘씩 퇴근을 한다. 나와의 약속 때문에 아직 남아있는 김 팀장. 퇴근을 하지 않는 김팀 장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냐고? 김 팀장은 부장이 있든 없든 항상 9시 30분에 퇴근한다. 회사에 남아 야구 중계방송을 보려는 것이다. 누구도 퇴근하지 않는 김 팀장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후 7시. 팀장이 나에게 '나가지'라고 한다. 오후 7시면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멈춘다.
CCTV가 없는 계단을 이용해서 CCTV가 고장 난 옥상 흡연 구역으로 데리고 간다. 나와 김 팀장이 함께 옥상으로 올라오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옥상은 지금 난간 공사 중이다. 원래 있던 철로 된 난간은 철거되고, 임시 난간이 그 기능은 상실 한 채 난간의 위치만 표시하고 있다. 빨간색으로 [위험]이라고 가득 채워진 비닐 난간이 바람에 미친 듯이 펄 럭거린다.
드디어 난간에 섰다. 김 팀장은 나에게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라는 듯 너무 당연하게 담배를 물고 나를 본 다. 그래, 좋아, 잘 하고 있어. 내 생각대로야.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나는 라이터를 켜고, 김 팀장의 담배에 불을 붙일 것처럼 다가가다, 건물 아래로 라이터를 떨어뜨린다. 미 간을 살짝 찌푸리며, 김 팀장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가볍게 툭! 아주 가볍게 툭! 김 팀장의 등을 가 운데 손가락으로 살짝 민다.
"어억!”
짧은 비명 소리 뒤로 퍽!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바닥을 내려다봤다. 김 팀장의 머리가 터졌다.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다행히도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다. 자동차가 있었다면, 애꿎은 자동차 주인에게 미안할 뻔했다.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다. 무릎이 바깥으로 꺾였다. 여전히 김 팀장의 머리에서 피가 콸콸콸 쏟아진다. 사람 머리에 저렇게나 많은 피가 들어있구나 새삼 배 우게 된다.
조금 더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저렇게 꺾인 다리로 어디 저승에나 갈 수 있을까? 쯧.
그의 손에는 보라색 일회용 라이터가 들려있다. 떨 어지면서 잡았을까? 독한 놈.
누가 봐도 사고로 떨어진 모양새다. 내가 옥상에 올 라 온 증거는 없고, 라이터에도 내 지문은 없다. 옥상 에 올라오기 전 손가락에 본드를 묻혀놨다. 내 지문이 어디에도 남지 않도록.
김 팀장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그의 하얀색 와이셔츠를 벌겋게 물들인다.
'잘 가라. 이 새끼야.'
[딩. 동. 댕. 동. 이번 역은 삼성. 삼성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뭐하나, 내리지 않고."
"어? 팀장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사당역부터 있었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아침부터 지하철에서 실 없이 웃고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시죠."
오늘 나는 열일곱 번째 살인을 했다.
*부크크 전자책으로 발간된 [빨간책_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