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by 이파리북스


가볍게 경례를 하고 정문을 나섰다. 인적 끊긴 거리에는 초겨울 밤공기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멀리 어둠 속에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 있는 차 한 대가 보였다. 삼촌인 걸 대번에 알았다. 차를 향해 잰걸음으로 빠르르 걸었다. 운전석 창 밖으로 희미하게 담뱃불이 보였다. 담배 는 손가락 옆에서 바짝 타고 있었다. 조수석에 얼른 올라탔다. 삼촌은 나를 한 번 보고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휙 던졌다. 차는 급하게 출발했다. 순간 몸이 뒤로 쏠렸다. 힐끗 삼촌을 봤다.


히터 때문에 건조해진 차 안 공기는 더 없이 가져 줬다.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었다. 저녁에 다듬은 머리가 여전히 까슬까슬했다.

인적이 끊긴 산길을 빠르게 지나, 순식간에 고속 도로로 들어섰다.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숨 자라고 삼촌이 말했다. 응, 하고는 고개를 돌려 창을 내다봤다. 내 얼굴만 보였다. 볼을 한 번 쓰다듬었다. 지난밤 불침번을 서느라 잠을 못 잔 탓에 얼굴이 까칠했다.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운전하고 있는 삼촌이 보였다. 삼촌은 입술을 앙 다물고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만 달싹거리다, 삼촌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 했다.

창을 조금 열었다. 찬 공기가 훅 들어왔다. 늦은 밤이라 고속도로는 한적했다. 가로등은 일정하게 켜 있었고, 앞서 가는 승용차와 옆 차선의 SUV도 일정 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싣지 않은 대형 트럭 이 우리 옆을 요란하게 휙 지나갔다. 삼촌의 목소리 가 들렸다. 뭐라 뭐라 말한 것 같은데 듣지 못했다. 차 창을 닫고 뭐라고 했느냐 되물었다. 삼촌은 시끄러 우니까 창문 닫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꾸벅 잠이 들었다 깼다. 한참을 달린 것 같다. 저 만 치 보이는 휴게소 이름을 보고 대충 위치를 짐작했다. 잠깐 휴게소에 들르자고 삼촌이 말했다. 적당한 곳에 주차했다.

나는 얼른 일어나 휘적휘적 팔을 흔들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딱히 소변이 마렵지도 않았는데, 한참 동안 오줌을 눴다. 추운 날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세면대 거울 가득 물때가 껴서 지저분했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거울에 한 번 뿌리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다시 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삼촌 차로 갔다. 차문은 잠겨있었고, 삼촌은 없었다. 얼른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후 우우 길게 내뱉은 담배 연기 너머로 삼촌을 찾았다. 환하게 불 밝힌 편의점에서 나오는 삼촌이 보였다. 담배를 얼른 두어 번 더 빨아들이고 발로 비벼 불을 껐다.


차 안에는 아직도 건조하고 가벼운 히터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삼촌은 들고 있던 봉지에서 캔 커피를 하나 꺼내 마시고, 나머지는 봉지 째 나에게 건네줬다. 껌, 생수 그리고 귤 한 망이 들어있었다. 껌은 꺼내 콘솔 박스에 넣어두고, 생수는 내가 한 모금 마신 후 에 봉지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귤......

나는 귤 망을 뜯어 귤을 조물조물 만졌다. 적당히 말랑말랑해진 귤을 까서 삼촌 입에 물려주고, 나는 단단한 새 귤을 까먹었다. 귤이 아주 달았다. 몇 개 까먹다 보니, 금세 손톱이 노래졌다. 봉지 안 가득한 귤껍질 속에서 남은 귤을 세 개 골라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삼촌은 나와 10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친 형제처럼 같이 커서 그런지, 나와 삼촌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둘 다 귤을 좋아했다. 대신, 나는 속이 꽉 차 단단한 귤을 좋아했고, 삼촌은 말랑말랑한 귤을 좋아했다. 내가 귤 서너 개를 까먹을 동안 삼촌은 그제야 귤 한 개를 겨우 까먹었다. 삼촌은 단단한 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려고 한참 동안 조몰락거렸다. 덕분에 나는 삼촌보다 귤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장에서 귤 한 봉 지를 사면, 꼭 그중 세 개를 따로 챙겨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조물조물 만졌다. 삼촌 몫이었다. 할 아버지는 항상 삼촌이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귤을 만들어왔다.


삼촌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렸는데, 전화가 왔다. 삼촌 대신 내가 받았다. 동생이었다. 동생이 놀라 어떻게 나왔냐 물었다.


다음 주에 휴가를 나올 계획이었다. 저녁을 먹고 휴가 때 가지고 나갈 별사탕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휴가 때 가지고 나갔던 별사탕을 아빠가 좋아했었다.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에는 건빵만 있었는데, 세상 좋아졌다며 으그작 으그작 드시던 게 생각나서, 아빠 드리려고 하나도 먹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 놨었다. 휘파람이 절로 났다. 군화에 침을 퉽! 뱉어 광을 내고 있는데, 행보관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삼촌의 전화였다. 낮게 가라앉은 삼촌의 목소리에 그저 안부를 묻는 전화가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았다. 행보관은 이미 절차를 다 마친 상태였다.


동생의 전화를 끊고, 나는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번 더 귤을 조몰락거렸다.


우리는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작은 시골 도시 는 조용했다. 주차장 구석에 아빠의 트럭이 보였다. 삼촌은 아빠의 트럭 옆에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찬 기운이 올라왔다. 삼촌과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유난히 환한 빛이 가득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꾸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진한 향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다. 무겁게 내리 깔린 공기가 자꾸만 두 다리를 붙들었다.오른쪽 복도 제일 끝에 유일하게 불 밝혀진 곳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삼촌은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왼쪽 주머니 속에 넣어둔 귤을 조몰락거리며 삼촌 뒤를 쪼르르 따라 걸었다. 복도 가득 내 군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세 고모들은 서로 엉켜 영정사진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아빠는 혼자 고모들 반대편 벽에 기대앉아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내 군화 소리에 모두들 우리를 돌아봤다. 고모들은 삼촌을 붙잡고 연신 막둥이 막둥이 부르기만 했고, 아빠는 내 손을 잡았다.

아빠와 고모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난 할아버지 사진 앞에 내내 주머니에서 조물 거리던 그 귤을 올려놨다.





*부크크 전자책으로 발행된 [빨간책_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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