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툭...... 툭...... 툭...... 툭......]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유난히 하얀 달빛이 방안 가득하다. 다리가 불편했다. 침대에 누운 채, 두 다리를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해 봤다. 발목을 두어 번 돌려 봤다. 다리 사이에 베개 하나를 끼고 자세를 고쳐 누 웠다.
이번엔 골반이 뻐근하다.
[툭.... 툭.... 툭.... 툭....]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눈만 감고, 잠은 못 이룬 채 시간만 덧없이 지났다. 젠장,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툭.. 툭.. 툭.. 툭..]
엄마와의 통화는 항상 엄마의 한숨으로 끝이 난다. 학자금 대출이자 연체 문자는 쉬지도 않고 온다. 이젠 가만히 누워있어도 문자 오는 소리가 들린다.
[툭. 툭. 툭. 툭]
눈을 감고 있는 게 무의미했다. 다시 눈을 떴다. 오 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이마를 한번 만져봤다. 달빛이 하얗게 가득 찬 방 안에 검은 구름 그림자가 흘러 들 어온다. 그림자 테두리를 눈으로 따라 그려본다.
[탁...... 탁...... 탁...... 탁......]
내일 11시까지 강남으로 가야 하니까, 집에서 7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면 8시 반…… 간단히 아침 먹고. 가만 …… 아침 뭐 먹지?
[탁.... 탁.... 탁.... 탁....]
그래, 그냥 갔다 와서 먹지 뭐. 9시에 출발하면 강남까지 지하철 타고 1시간, 넉넉잡아 10시 반까지.
아...... 그냥 30분 일찍 일어나야지.
다시 옆으로 돌아누웠다. 온몸이 뻐근하다. 답답해 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브래지어를 벗어 침대 밖으로 던졌다.
[탁.. 탁.. 탁.. 탁..]
베개를 들어 두 번 툭툭 쳤다.
베개 모양을 다시 잡고 누웠다.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툭. 탁.]
고요한 방 안에 시계 초침 소리,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가 가득하다.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점점 커졌다.
벌떡 일어났다. 벽에서 시계를 떼내 건전지를 뽑아 다. 건전지와 시계를 바닥에 내던졌다. 곧장 싱크대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있는 힘껏 내리 쳤다. 잡아 흔들었 다. 저러 다간 수도꼭지가 뽑혀버릴 것 같다.
[……]
다시 달빛만 가득 찬 고요한 방이다.
이제야 평온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누워 이제부터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막 잠이 들렸는데, 어깨뼈 근처가 살짝 가려웠다.
침대에 누워 등을 살살 긁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긁었다. 영 시원치가 않았다. 잠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목 뒤로 허리 옆으로 요리조리 긁었다. 가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 등을 대고 온몸을 바둥바둥 비틀어봤다.
일어나서 침대 모서리에 등을 대고 위아래로 움직 였다. 여전히 가렵다. 뭔가 시원하게 긁을 만한 게 필요했다.
책상 서랍을 뒤졌다. 두 번째 서랍 구석에 30cm 자가 있다. 잠옷 속으로 자를 넣어 힘 있게 등을 긁었다. 오른쪽을 긁으면 왼쪽이 가려웠고 왼쪽을 긁으면 오른쪽이 가려웠다. 자로는 안될 것 같다.
책상 모서리에 등을 대고 위아래, 좌우로 움직였다. 등이 점점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가려움이 가시지는 않는다.
욕실로 들어가 윗옷을 벗고, 거울에 등을 비춰봤다. 등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벌레라도 기어 다니나 싶어 어깨를 최대한 비틀어 등을 샅샅이 살폈다. 옷을 탈탈 털어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다.
손바닥으로 등을 탁탁 쳤다. 다시 한번 등을 살펴봤다. 벌겋게 부어 오른 양쪽 어깨뼈 옆으로 뭔가 볼록하게 올라 와있다.
손을 힘껏 뻗어 만져봤다. 딱딱하다. 뾰루지인가 싶어 터뜨리려고 하는데 터지지 않는다. 입술을 꽉 물고 손톱을 세워 쥐어 뜯어봤다.
저것 때문에 가려운가…… 생각하는데, 잠깐 멈췄던 가려움이 또다시 화악 올라왔다. 찬물을 등에 뿌렸다. 찬물이 등에 닿으니 가려움이 조금 가시는 것 같다. 마른 샤워 타월로 등을 문질렀다.
옷장에서 새 잠옷을 꺼내 입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제는 제발 잠을 자고 싶다.
......
돌연 벌떡 일어나 온몸을 긁기 시작한다. 손톱을 세 워 등을 벅벅 긁는다. 손바닥으로 등을 때린다. 온몸을 때린다.
부엌으로 달려가 마른 철 수세미를 집어 든다.
등을 긁는다. 살갗이 벗겨진다. 가려움은 멈추지 않는다. 더욱 가열하게 등을 긁는다. 마른 철 수세미에 등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뭔 가 다른, 더 날카로운 뭔가가 필요하다.
싱크대를 뒤진다.
칼이다.
……
손가락으로 살짝 등을 만져본다. 손바닥에 피가 묻어 나온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다. 등이 더 이상 가렵지 않다. 등에 난 딱딱한 것을 찾았다. 그 딱 딱한 것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딱딱한 것을 손가락으로 슬쩍 만지니 그제야 욱신거리는 등이 느껴졌다.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깊이 파묻는다. 발가락이 오므라든다. 무릎을 감싸고 최선을 다해 참고 있다. 욱신거림이 점점 심해진다.
으윽 신음이 새어 나온다.
가려움이 그러했던 것처럼 욱신거림은 빠르게 몸을 잠식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무언가 잡을 것을 찾아 방 안을 기었다. 손으로 더듬거려 간신히 책상다리를 붙잡았다.
아픔은 당연하게도 고통으로 이어졌다. 아무런 소리 도 지를 수 없다. 아프다. 참고 있다. 아주, 최선을 다해 참고 있다.
등이 찢어진다. 무언가 등에서 꿈틀 올라온다. 윙크 린 몸을 펴지도 못하고 가쁜 숨을 겨우 몰아 쉰다. 내 등의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짧은 비명 소리를 절정으로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간신히 손을 뻗어 등에서 꿈틀 올라온 ‘그것’을 만져 본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것이 작게 파닥거렸다. 내 등에서 파닥인 ‘그것’이 뭔지 봐야만 한다. 눈썹 한 번 꿈틀 할 힘도 없는 내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파닥 거림을 확인해야만 한다.
날개.
힘없이 쳐져 있는 듯하다가 이따금씩 팔딱팔딱 분명 그곳에서 움직이고 있노라 나에게 알리고 있다. 알에서 갓 깨난 새처럼 축축한, 그 날개.
그래, 날개다. 등에서 날개가 나왔다. 작았다. 겨우 어린 아기 손바닥 만할까? 그 작은 것이 자꾸만 움직 였다.
웅크린 몸을 아직 펴지도 못하고 있다. 일어날 기운이 없다. 내 몸이 힘을 잃고 축축 쳐질수록 그 날개는 더 힘차게 파닥거렸다. 그리고 커졌다. 어느새 웅크린 채 쓰러져있는 몸을 감싸고도 남을 만큼 커졌다.
구름 그림자가 천천히 방을 빠져나갔다. 다시 하얀 달빛이 방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달빛에 날개가 반짝 였다. 이제는 간지러움도, 욱신거림도, 아픔도 느껴질지 않는다.
날개가 나오려고 간지러웠던 걸까, 간지러워 긁었기 때문에 날개가 나온 걸까.
그래, 뭐가 됐든.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났다. 부러진 자와 널브러져 있는 모든 것. 바닥과 벽엔 핏자국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에 기운이 빠진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렇게 날개 속에 묻혀있길 한참. 서서히 일어나 창문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시원하다. 온몸 가득 흐른 땀이 단번에 식는다. 쓰읍 하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달을 한번 쳐다봤다.
가만히 날개를 펄럭여 본다.
날 수 있을까?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발뒤꿈치를 들고 까치발로 난간에 섰다.
왼발을 뗐다.
간신히 오른발 엄지발가락으로 아슬아슬 버티고 서 있다.
후우 하고 깊은숨을 내뱉는다.
오른발을 툭 차 올린다.
하늘을, 날고 있다.
내 그림자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한참을 창 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본다.
날개를 크게 세 번 펄럭 펄럭 움직인다.
그리고 나는 멀리 날아간다.
오늘도 역시나 꽉 막힌 출근길 올림픽대로에서 꼼짝 도 못하고 서 있다. 항상 듣는 라디오에서는 이 맘 때쯤 나오는 차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라디오 DJ의 과장된 목소리에 지쳐갈 때쯤 들리는 이 차분한 아나운서 소리 덕분에 답답한 차 안에서 겨우 버티고 있다.
"오늘 새벽 4시쯤 일산 모 아파트 화단에서 20대 여성이 온몸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출근 하 던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 여성은 최근 취업 스트레 스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핏자국으로 가득한 처참한 방 안이 그녀의 힘들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여성이 여러 차례 자해를 한 후, 투신한 것으로 보고 유가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하 고 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재수없게 아침부터 사람 죽는 얘기야.’ 라디오 채널을 돌린다.
* 부크크 전자책으로 발간된 [빨간책_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