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진짜 착해.”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눈 오는 12월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한 명한이가 저녁한끼 하자는 명목으로 만든 소개팅 자리였다. 그녀를 소개하는 명한이는 연신 착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녀는 예뻤다. 명한이가 착하다고 하던 말이 이해가 됐다. 예쁘면 착하다. 명한이는 눈치껏 자리를 빠져줬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했다. 그녀는 별다른 말이 없이, 내 말에 맞장구쳐주기만 했다. 도톰한 입술에 약간 쳐진 눈을 가진 그녀는 연신 강아지 같은 웃음을 지었다. 늦은 시간,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려는데 그녀는 나에게 목도리를 건넸다.
“추운데 두르고 가세요.”
괜찮았다.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죄송해서 그렇다면서, 춥다고, 두르고 가라고 했다. 처음 본 그녀의 집 앞에 서서 본의 아니게 실랑이를 했다. 그녀는 억지로 내 목에 목도리를 둘러줬다. 그녀가 둘러준 목도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창에 비친 목도리를 보면서 너무 착한 그녀와 나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핑크색 퍼 목도리였다. 그게 그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에 명한이를 통해서 가끔 소식은 들었지만, 인연이 아닌 사람의 소식은 쉽게 잊혔다.
오늘, 그 명한이와의 술자리에서 그녀의 부고를 들었다. 알딸딸 술이 올라있었고, 조개탕에서 조개를 하나 꺼내 까고 있었다. 명한이는 전화를 끊고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죽음을 나에게 알렸다. 나는 서둘러 까던 조개를 마저 까먹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명한이를 따라나섰다. 나까지 갈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명한이와 같이 있었고, 약간 취했고, 또 오늘은 눈 오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장례식장은 멀지 않은 곳이었다. 편의점에 들러 껌을 하나 사서 씹어 뱉고 그녀를 만나러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부고였는지, 장례식 분위기는 침통했다. 하얀 국화꽃 사이 그녀는 여전히 그 강아지 같은 웃음을 하고 우리를 맞아줬다. 침통한 분위기와 다르게 환한 웃음이었다. 그녀의 사진 앞에 하얀 국화를 올리고, 오랜만이에요, 속으로 인사를 올렸다. 명한이는 나를 식당 한 가운데 식탁에 앉혀놓고, 대학 동창들을 찾아 나섰다. 널찍한 상에 혼자 앉아 명한이를 기다리며 귤을 하나 까먹었다.
“진짜 착했잖아.”
옆에 앉은 사람의 말이었다. 맞다. 그녀는 착한 여자였다.
“교통사고래. 왕복 육 차선 도로였는데, 유기 견 한 마리가 가운데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나 봐. 얘 성격에 그냥 가만히 있었겠어? 착하잖아. 앞뒤 안 가리고 그대로 뛰어든 거지. 다행히 개는 구했는데, 얘는 차를 못 피했나 봐. 얘 사고 나고, 왕복 육 차선이 꽉 막혔잖아. 뉴스에도 나왔었는데 못 봤어? 착해서 그래. 착해서.”
교통사고였다. 착한 그녀는 유기 견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맞아. 얘가 원래 불쌍한 거 그냥 못 넘어가잖아. 초등학교 때, 누구냐 그 미현이. 부모님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같이 살던 미현이 기억나? 걔 형편이 안 좋아서 겨울에 얇은 옷 입고 다닌다고 여름옷이고 겨울 옷이고 윤희가 자기 입던 옷 집에서 한 무더기 가져다줬었잖아.”
“근데, 그때 윤희네 엄마가 학교 찾아와서 난리 나지 않았어?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옷 가지고 와서?”
“응, 어릴 때니까. 어린 게 뭘 알았겠어? 그냥 착하니까, 미현이 가엽다고 그런 거지.”
“맞아. 너무 착해서 그래. 근데 미현이는 요즘 뭐 한대? 그때 전학 가고 연락하는 사람 없지?”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 무리가 한동안 그녀의 얘기를 하다 이내 곧 각자의 근황 얘기로 넘어갔다. 나도 그들의 대화에서 귀를 떼고, 눈으로 멀리 명한이를 찾았다. 명한이는 꽤나 시끌벅적 한 무리에 끼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명한이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명한이는 의자가 휘청 할 만큼 몸을 젖혀 술을 마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명한이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별로 그 무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명한이는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저 쪽으로 가자. 대학 동창들이야.”
괜찮다고,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명한이에게 말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고, 식당 안 분위기가 답답하기도 했다.
여전히 눈이 오고 있었다. 숨을 후 내뱉자, 하얀 입김이 후 우우 뿜어져 나왔다. 건물 안 자욱한 향 너머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른아른 멀어졌다. 마른 손을 비비고 담배를 꺼내 피웠다. 술이 깨고 있었다. 조금씩 추워졌다. 상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곁에 일행인 듯 아닌 듯 슬쩍 걸 터 앉았다. 주식이 어쩌고 하는 말들 사이로 윤희라는 이름이 들렸다.
“윤이나네?”
“응, 불광 좀 내 봤어.”
“번쩍번쩍 광이 나는 구만. 장례식장에 너무 번쩍번쩍한 거 아니야?”
“누가 신발 훔쳐갈까 봐. 일부러 그랬는데?”
아니었다. 담배를 다 태우지도 않고 비벼 껐다. 눈발이 거세졌다. 가로로 날리는 눈을 보고 있는데, 두 대의 빨간색 차가 연달아 들어왔다. 일행인 듯 보이는 그들은 허겁지겁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뒤에 달린 온기를 따라 나도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복도 끝 3호실 안에서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녀가 쉬고 있는 곳이었다. 명한이를 찾아 식당으로 들어갔고, 명한이의 동창 중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데리고 그들의 자리로 갔다. 3호실 안 울음소리가 커졌고, 웅성웅성하던 식당 안은 말소리가 사그러 들었다. 울음 사이 간간이 들리는 쩝쩝 소리와, 테이블 보 바스락거리는 소리, 탁 하고 나무젓가락 분지르는 소리만 들렸다.
“윤희네 고모.”
나에게 명한이가 말했다.
“시골에 계시는 고모네 식구들인데, 눈 때문에 이제야 왔다나 봐.”
명한이의 고갯짓에 모두들 3호실 안을 돌아봤다. 빨간색 차에서 내린 그 무리였다.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고, 젊은 여자가 아주머니를 다독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조용히 눈만 비비고 있었다.
“이사장?”
명한이의 동창들 중 한 명이 물었다. 명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3호실에서 울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모두들 들릴 듯 말 듯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윤희네 고모가 우리 학교 이사장이었어.”
“기자회견 이후로 처음 보네.”
“아, 예전에 그 사건?”
“이사장도 많이 늙었네.”
“그 사건? 그 사건이 뭐야?”
“아, 맞다. 너 유학 갔을 때라서 모르겠네?”
명한이와 동창들은 대화인 듯, 혼잣말인 듯 작은 소리로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그들의 눈은 여전히 3호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3호실 안을 들여다봤다. 울음소리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오열하듯 울던 아주머니는 그녀의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한이와 동창들은 3호실에서 눈길을 거두고 다시 식탁 위 음식으로 향했다. 그들은 잔에 조금씩 남아있던 맥주를 한 모금에 털어 마셨다. 식당은 다시 작은 말소리들로 웅성웅성했다. 명한이의 동창 중 한 명이 빈 잔에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윤희가 처음에는 자기 고모가 이사장이라고 말을 안 했어. 뭐, 그런 거 자랑하고 하는 애는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내 잔에 맥주를 따라 줄 때, 내 옆자리에 앉은 명한이가 말했다.
“맞아. 입학할 때부터 말했으면, 오히려 약간 좀 선입견 생기고 그랬을 거 같은데. 우리 다 나중에 알았잖아. 착해 애가. 이사장이 고모인 거 치고는 하고 다니는 것도 수수하고, 착하고. 생각도 못했지, 뭐.”
명한이의 동창들은 대답 없이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였고, 나도 같이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알 것만 같았다. 명한이가 한 말 중에서 그녀가 착하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따라 준 명한이의 동창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소곤소곤 말했다.
“어차피 이사장도 두문불출, 학교 운영에는 영 관심도 없었어. 실세는 어차피 총장이었으니까. 근데 그 총장이 갈수록 도를 넘은 거야. 얼토당토않은 사람을 교수로 앉혀놓고, 온갖 비리란 비리는 다 저지르고 다니고.”
“비리 백화점이지.”
“뭐, 학생들이야 어차피 그냥저냥 간신히 에프 학점만 면하고, 졸업장 따서 취업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려니 했거든. 근데 새로 선임된 총 학생회장이 완전 정의파였던 거야. 그 해에 젊은 교수 하나가 전임으로 들어왔는데, 완전 개판이었어. 매 수업마다 30분씩 지각에, 그나마도 수업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았고, 짧은 치마 입고 온 애들은 에이뿔 주고, 긴치마 입고 오면 비. 남자애들은 비 학점이 만점이라고 생각하고 다녔어야 했어. 하필 그 강의가 학생회장이 듣던 강의였어. 가만히 못 있지. 당장에 가서 따지기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알았다고만 하고 별 다른 조치 없고. 총학생회가 나서서 교수 논문 표절 찾아내고, 총장 사위라는 것도 알아내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학교에서 반응이 없는 거야. 쉬쉬 하기 바쁘고. 총장이 떡 버티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총학생회가 총장 비리를 판 거지.”
“내 친구가 총학생회였잖아. 걔 말이, 총장 비리 찾는 게 너무 쉽더래. 비리를 너무 대 놓고 저질러서. 사람들은 눈먼 사람들처럼 모른척했던 거고. 근데 해도 해도 너무 하니까, 별 관심 없던 애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거야. 총학생회장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들고 일어섰어, 완전. 그 뭐지, 그거. 뭐지? 그거 막 게시판에 붙이는 거 그거.”
“아, 대자보?”
“그래그래, 대자보. 대자보가 학교에 쫙 깔리기 시작했어. 학생들도 점점 관심 보이고, 언론도 조금씩 움직이고 하니까, 학교 측도 가만히만은 못 있고 그 젊은 교수한테 사퇴하라고 압박했나 봐. 그런데도 그 교수 죽어도 사퇴 안 한다고 버티고 앉아있었어. 총장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까, 총장 믿고 버티고 있었던 거지. 학생회장이 더 이상 못 참겠다 해서 학교에 텐트 펼치고 단식투쟁 시작한 거야. 총장이랑 교수, 관련된 인사들 다 사퇴하라고.”
“학교 완전 뒤숭숭했잖아. 그 해에 아마, 우리 학교 축제도 없었을걸?”
명한이의 동창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며, 그 해 학교에 대한 기억을 뱉어냈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엊그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것처럼 표정이 꿈틀거렸다. 몰래 숨어 독립운동하는 독립투사가 된 것 마냥 소리는 속으로 삼키면서, 말투는 결의에 차 있었다. 어떤 이는 힐끔힐끔 이사장을 훔쳐보기도 했다. 총학생회장의 단식투쟁이 시작된 장면에서는 말하는 이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있었다.
“아마 한 달 넘게 단식했을 걸? 이쯤 되니까 언론이 엄청 움직인 거야. 안 그래도 덩치가 작은 총학생회장이 뼈만 남아있었어. 그때 총장이 사람들 몰래 텐트에 찾아왔나 봐. 자기 사회적 위치도 있고 그러니까, 쫓겨나는 꼴은 좀 아니지 않으냐, 단식 그만 두면 자기가 조용히 물러나겠다, 약속을 하고 갔대. 각서까지 써주고 갔대. 완전 꼬리 내린 거지. 다음 날 총학생회 다 모아 놓고 회의를 한 거지. 그리고 이틀 정도 지나서 학생회장이 단식 그만두고 나오려는데, 윤희가 온 거야. 이사장이랑 같이.”
“애가 착하잖아. 친구가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 없었다나 봐. 윤희가 이사장을 설득했대. 다들 그날 입학하고 이사장 처음 봤을 걸? 아무튼 이사장 오자마자 총장 사퇴하고, 밑에 있던 사람들 줄줄이 사직되고, 사건이 그 날로 바로 끝. 정말 종결됐어.”
“윤희가 이사장이 고모라는 걸 학교에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대. 다들 불편해할 거라고. 그런데도 나선 거야. 착하니까. 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차마 못 보겠던 거지. 무슨 백마 탄 기사처럼 텐트에 있던 총학생회장 둘러업고 텐트에서 걸어 나왔잖아. 학교 신문에서 그 사진 보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그 날부터 윤희 학교 영웅 됐었잖아.”
착한 그녀의 대학시절 영웅담이 마무리될 즈음, 3호실에 있던 그녀의 고모 일행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명한이와 동창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한 번에 시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녀의 고모는 지친듯한 걸음걸이로 부축을 받아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우리에게 오는 건 아니었지만, 명한이와 동창들은 안절부절 못 했다.
“인사해야 하나?”
누군가 속삭였고, 모두들 반쯤은 앉아있고 반쯤은 일어 선 어정쩡한 자세로 선 듯 앉은 듯했다. 상관없는 나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고, 편안했다.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어 먹으려는데, 그녀의 고모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짧은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스쳤다. 명한이와 동창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재빨리 반쯤 앉아있던 엉덩이를 완전히 들고 조용히 일어나 그녀의 고모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녀의 고모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 했다. 명한이가 나서서 말했다.
“윤희 대학 동창입니다, 이사장님.”
“아, 그래요. 다들 와 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고모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명한이와 동창들은 그녀의 고모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서 있다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학교 운영하시나?”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셨어. 조용히 살고 싶으시다나?”
“그럼 우리 학교 이사장 누구야?”
“윤희네 오빠.”
3호실 안에는 그녀의 아빠, 그녀의 엄마, 그녀의 오빠가 앉아있었다. 지친 그녀의 부모님 대신, 그녀의 오빠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와 눈매가 닮았다. 그녀의 오빠도 착한 그녀처럼 착해 보인다.
“명한이 고등학교 동창? 윤희랑은 무슨 사이예요?”
그러고 보니, 나는 명한이의 동창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제야 내가 궁금해진 명한이의 동창들은 맥주를 마시며 나를 쳐다봤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소개팅 한 사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어쩌면 아무 사이 아닌 사이라고 해야 하나. 그제야 내가 왜 이 곳에 와 있나 고민했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될 자리에, 아니 어쩌면 오지 말아야 할 자리에 내가 온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착한 그녀를 착하다는 이유로 한 번 만나고 거절을 했으니, 어쩌면 나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착한 그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가. 술이 깨고 있었다. 혼자서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을 때, 명한이가 대신 말해줬다.
“그냥, 사회친구.”
사회친구. 사회친구라니. 정말 그녀와 내가 아무 사이가 아니란 걸 명한이가 말해주고 있었다. 사회 친구라는 말을 곱씹으며 속으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명한이의 동창들은 더 이상 그녀와 나의 관계에 대해, 사회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전에 없던 어색한 정적이 사이에 가득 찼다.
돼지고기 보쌈을 하나 집어 먹었다. 처음 상이 차려질 때부터 있던 보쌈은 어느새 겉면이 조금 말라있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다. 야들야들 맛있게 잘 삶아졌다. 보쌈을 다시 한 점 먹고, 식당 안을 돌아봤다. 첫 째날 저녁시간이 지났는데도, 북적북적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식당 저 멀리 3호실 안에서 그녀가 하얗게 웃으며, 자신을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을, 자신을 보기 위해 와 준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착한 그녀다. 자신은 떠나가지만,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저렇게나 밝게 웃어준다. 3호실 안 상주가 보이지 않았다.
명한이가 일어나 화장실로 가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사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터였다. 쉬지 않고 맥주를 마신 탓에 오줌이 많이 차 있었다. 끊이지 않고 힘없이 줄줄줄 오줌이 나왔다.
“안 가냐?”
명한이에게 물었다. 그녀를 보러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명한이와 둘이 하는 대화였다.
“조금 있다가 가자.”
명한이가 바지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명한이의 친구들이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로 돌아가면, 또 어색한 정적과 형식적인 대화가 가득할 게 뻔했다. 마침, 명한이가 향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머리가 아찔하다며 밖으로 나가길 제안했다. 장례식장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
눈은 그쳐있었다. 차고 깨끗한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왔다. 구석에 앉아 낄낄대는 사람들, 눈 위를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 휴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 한숨을 푸푸 내 쉬는 사람들, 담배연기를 유독 길게 내뱉는 사람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곳이 장례식장인 줄 몰랐을 테다. 유독 내린 눈이 하얗다.
명한이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 넣고, 숨을 길게 내뿜었다. 입김이 하늘 위로 아른아른 올라갔다.
“친했냐?”
초등학교 때, 나는 명한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갔다. 그때는 이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곤 했다. 어차피 그 아파트에서도 이년만 살고 이사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린 나는 누구와도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날도 드물었고, 나가서 놀더라도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뒤 혼자 놀았다. 그 날도 혼자 놀고 있는데, 야무지게 가방을 둘러멘 꼬마가 나에게 눈을 뭉쳐 던져줬고, 아파트에 이사 간 후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그 꼬마가 명한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년이 지나도 이사를 가지 않았고, 명한이와는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이다. 명한이는 지금 많이 슬퍼하고 있다.
“좋아했어.”
“네가?”
“우리.”
착한 여자 최윤희 (2)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