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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Jun 09. 2016

제일 개새끼는 그녀의 의사 남편

눈먼자들의 도시_쁘쯔뜨끄와 책 이야기

눈먼자들의 도시 (해냄 출판사)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쁘쯔뜨끄의 책 이야기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책을 덮지 못 했다.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 문장이었다.


안돼. 이제 와서 왜 의사 아내가 눈이 멀어야 하는 거지?
모든 사람의 눈이 돌아오고 있잖아.

그녀의 눈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생각을 한동안 걷어들이지 못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망설임 없이 눈먼 자들의 도시 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책도 아니고, 전집을 가지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도 아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공연장에서 하우스 도우미로 일한 적이 있다.

공연하기 전과 끝난 후에만 빠짝 일하면, 공연하는 도중은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꿀 알바였다.

그 때 읽은 책이다.

연극 라이어1탄을 올리던 때였는데, 런닝타임 내내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을 내 보내는데,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읽는 내내 입술을 꼭 깨물고, 손을 꼭 쥐고 읽게 되는 책이다.

읽는 도중에는 쉼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놓칠까, 도중에 끊지도 못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틈 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읽어내느라, 의문을 가질 새도 없다.


그러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생각이 든다.


의사 아내는 도대체 왜?


평범한 주부였던 의사의 아내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사람들에게 희생을 했을까?

남편을 위해?

 아니면,

 타고난 연민 때문에?

 혼자만 눈이 멀지 않은 책임감 때문에?


어쩌면, 점점 더 강해져 가는 듯 보이는 그녀가, 사실은 제일 약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혼자 남은 거나 다름 없으니까.

그렇다면,

너무 외로워서 그렇게 눈먼 자들의 옆에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걸까?

 혼자 남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나는, 어쩌면 나라면,

음, 이런 이유라면, 기꺼이 희생 할지도 모르겠다.

의사의 아내가 나와 같지는 않을 테니, 그녀가 이런 이유로 희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연한 일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계속 읽어도 모르겠다. 이게 의사 아내의 희생은 맞는 걸까?


하지만 확실한 건,

모두가 백색의 눈병에 걸려버린 세계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제일 먼저 눈이 먼 사람도 아니고,

엄마를 잃은 사팔뜨기 소년도 아니고,

애초에 눈이 멀어 있던 맹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지옥 같은 세상을 외면하지도 못하는,

혼자서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다.


병에 걸리지 않아 축복 받은 것 같지만, 그녀는 철저히 외로워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실한 건, 그녀의 남편 인 의사는 개새끼라는 거.


그녀가 마지막에 내려다 본 “여전히 그 곳에 있던 도시”는,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이 전의 도시가 아닐 것이다.

그녀가 알던 도시는 사라졌다.

 벌거벗겨 진, 도시의 민낯을. 까발려진 사람들의 민마음을.

그녀가 그 도시를 잊을 수 있을까?


모두가 눈이 보이기 시작한 지금부터가 그녀의 진짜 불행이 시작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너무 행복에 겨워,이 행복이 정말 내 것인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언제 사라져 버릴 지 모르는 지금의 행복을,

너무나 평범해서 있다가 간지도 모르는 오늘 하루를 미친 듯이 붙잡고 싶어질 것이다.







덧,

책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눈뜬 자들의 도시를 사왔다.

아직도 끝까지 진지하게, 제대로 읽지 못했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너무 재미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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