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를 마치고 알게 된 점
우리 부부는 서로 놀리는 데 진심이다. 사소한 일에 턱없는 이유를 들어 비난하거나 상대의 요지와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으로 동의를 표하면서, 한마디로 놀려먹는 재미로 산다. 놀리지 않고 하루를 마치면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다.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 마지막 수업에서 느낀 점을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신랑이 한 마디 했다. "빨리 대작가 되자." 빨리도 없고 대작가가 될 수도 없다는 절절한 깨달음을 1시간 동안 얘기했는데 정확히 반대되는 말로 짧게 갈무리하는 걸 보니 제대로 듣긴 들었나 보다.
토요일 오전, 신촌 한겨레 문화센터 706호 강의실. 마지막 수업 날에는 둘러앉아 각자 쓴 100일 회고글을 직접 낭독하고 지금까지 쓴 글에 대한 동기들의 소감을 들었다. 각진 책상이 ㄷ자로 배치되어 있었지만 어느 라운드 테이블의 곡선보다도 둥그런 자리였다. 100일간 서로의 글을 읽어온 동기들의 코멘트는 따뜻하고 섬세했으며 진심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동기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소감을 전하면서도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부족하거나 없다고 느끼는 면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했다. 남의 글은 부러워하고 자기 글은 아쉬워했다. 작가만의 개성이자 대체불가한 아우라이건만.
성실하게 수업에 임한 사람의 글은 성실하게 성장해 있었다. 하루하루 인생을 꽉 차게 살아왔을 것 같은 사람의 글은 밀도가 높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경쾌함은 슈퍼 파워를 뿜으며 모두를 끌어안았다. 정말 솔직한 글, 리듬과 재치가 가득한 글,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는 글, 세련된 개구쟁이 같은 글, 뜨거운 것을 담담하게 요리하는 시크한 글까지. 나다운 글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나에게 없는 남의 걸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며 에너지를 쏟고 있는 작은 강아지가 떠올랐다. 그 애씀이 허망해 헛웃음이 났다. 바깥으로 뻗은 시선이 남을 쫓다 길을 잃었다. 이제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를 들여다보며 쓰자. 내 글은 기껏해야 내가 될 테니 차라리 가장 나은 버전의 내가 되는 일에 에너지를 쓰자. 그리고 매일 쓰자. 다른 수가 없다는 걸 처절히 느꼈다. 다른 사람처럼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조금 자유로워졌다.
100일을 쓰고 알게 된 다른 하나는 글쓰기에 '빨리'는 없다는 거다. 100일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시간이었다. 분명 그랬지만 모두 각자의 출발 지점에서 각자의 발 크기만 한 100 걸음 앞에 섰을 뿐이다. 우리는 어디 멀고 높은 곳에 도달하지 않았다. 글쓰기에 달리기는 안 된다. (그래서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나) 한 번에 한 발자국인데 한 발짝 옮기는 줄 모르고 제자리에서 세차게 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00일 중 많은 시간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버겁고 힘들었나 보다. 뛰기도 안 되고 미안하지만, 경보도 안 된다. 글 하나에 정속도로 한 발짝이다. 그다음 글도 같은 속도로 딱 한 발이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에 영 맞지 않는 방식인 데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도 맞지 않아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보려 애를 썼다. 지름길을 찾으려 하고, 다리에 달 모터는 어디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100일째 알게 된 건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 이 101번째 글은 꼭 한발 내딛는 줄 알고 쓸 수 있게 되었다. 100일 글쓰기로 이룬 쾌거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즉 경험 없는 머릿속 생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라고 본다. 특히 글쓰기처럼 연마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매일의 시간에, 찰나의 순간에 녹아 삶에 스며있는 게 아니라면 안다는 생각은 상상일 뿐 진짜는 아니다. 나보다 더 폼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점도, 글쓰기에 요행은 없다는 점도 100일 동안 써보기 전까지는 상상에 불과했다. 이제야 알겠다.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다는 걸.
마지막 수업 전날까지도 불안했다. 앞으로 계속 100일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고. 그 마음은 불안인 척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본색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매일 쓸 수는 있다. 매일 잘 쓸 수는 없어도. 대작가가 될 수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아 올 방법도 빠른 길도 없지만 매일 쓰기는 할 수 있다. 물론 브런치에서 이어갈 두 번째 100일 동안에도 나는 욕심 때문에 괴로워 몸부림치겠지만, 그럴 때마다 뱅뱅 도는 강아지를 떠올리고 이 글로 돌아오자. 잘하지 못해도 상상만 하지 말고 매일 가볍게 시도해 보자.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온전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채로운 빛깔의, 바라던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