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무라 요시아키 지음, 구수영 옮김, 유유출판사
저자 소개 문구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일하는 방법 연구자'. 와우. 20년도 더 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인데, 올 3월 유유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을 냈다. 내용은 꼭 작년에 쓴 것처럼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었다. 독립이나 퇴사를 종용한다거나 포시러운 먼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디자이너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일하는 방식을 구축한 12명의 인터뷰를 담았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주도권을 쥐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 두 사람의 작업 현장에 10년 후 다시 찾아간 내용까지 정성스레 덧붙였다. 아름다운 인터뷰는 독자의 몫으로 아껴두고 구매를 결정하게 한 서문의 일부를 적어본다.
"세상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일'이 누적된 것이기에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소외시키며 일한 결과 그것을 손에 쥔 사람까지 소외시키는 사회가 만들어지지만, 같은 구조로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는 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이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우선 일하는 방식을 몇 가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나도 나를 소외시키며 일한 시기가 있었다. 전업하기 전 기업에서 일할 때 연이은 야근에 지쳐있던 대리 시절이었을 거다. 부모님께 야근을 알리며 "오늘도 야근합니다. 먹고 살라다 보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빠의 답장. "좀 더 적극적인 마음으로 바꿔야 됩니다. 먹고 살라다 보니가 아니고" 뒤이어 "그리스 스페인 청년층 실업률 60%입니다. 유럽 대륙 청년층 실업 25 ~30%가량입니다. 일할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한국을 보아도 사정이 아주 어렵습니다. 아무쪼록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을 하십시오." '아무쪼록'이라는 간곡한 표현이 웃겨서 캡처한 사진을 친구들한테 공유했더니 'ㅋㅋㅋㅋ'와 머리를 쥐어뜯는 이모티콘이 쏟아졌다. 먹고살려고 마지못해 하며 살았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빠의 권고대로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만삭의 동료에게 짧은 인수인계를 받은 후 홀로서기 해야 했을 때, 새로운 업무를 하며 매일 야근하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렸다.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모르는 게 당연하니 언제든 물어보라고, 어느 순간 일을 딱 꿰찬 느낌이 들 거라며 응원해 주던 부장님이 있었지만 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는 괴로울 뿐이었다. 10여 년을 재무팀에서 일하면서 이직과 부서 내 팀 이동을 거쳤지만, 나만의 일하는 방식이랄 것이 없어 힘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그나마 에너지를 충전하며 다녔던 것 같다.
대리에서 과장이 된 즈음에, 이사님과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 내가 물었다. "이사님은 일이 재밌어요?" 그때 이사님의 대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놀이공원이야? 재밌는 건 돈 내고 해야지." 지극히 당연한 말에 같이 한바탕 웃고 (우리는 얘기하다 자주 높은 데시벨로 박장대소하는 케미가 있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이사님도 팀장님도 숫자를 보면 궁금해하시잖아요, 1.7%는 어떻게 나온 건지, 저 숫자 뒤의 사연에 관심이 가시잖아요. 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이 차이는 왜 생겼나 하면서." 팀장님은 늘 자발적인 태도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하는 팀장님을 보면서 나는 영 궁금하지가 않아서 걱정이라고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경험이 쌓이면 볼 수 있는 게 늘어나고, 또 여기저기서 듣는 정보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라고, 연차가 늘수록 일하기가 더 좋아지는 면이 있으니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다독여주셨다.
자상한 조언과 훌륭한 롤모델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업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끝내 일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지 못했다. 그때 이 책을 접했다면 달랐을까? 그때의 나라면 집어 들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스트레스에 녹아내린 뇌가 '자기만의 일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하고 냉소했을 거다. 하지만 나보다 현명한 이들이라면 혹은 덜 지친 사람이라면 읽고 자기 걸로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주변 지인들은 직장에서 연차가 찰 대로 찼다. 더 이상 하던 대로 할 수만은 없는 길목에서 갑갑한 이들뿐 아니라, 아직 경험이 적거나 없지만 어디에서든 자기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멀리 돌고 돌아 나와 더 맞는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잘 맞는 일이어도 일이란 하다 보면 힘들고 괴롭고 버거워지기 마련이고 계속 성장이 요구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변태가 필요했던 요즘, 시의적절하게 이 책을 만났다. 의뢰받은 일이든 창작이든 자기만의 일로 삼고 최적의 독창적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사업장에서건, 커리어의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건 간에, 모든 일하며 사는 이들을 위해 지혜가 책의 모양을 하고 나타나 주었다, 고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