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필사, 775일
사람들은 더 풍요롭고 자유롭고 똑똑해졌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더욱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럴수록 답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면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나를 잘 알고 믿고 좋아할수록 인생이 수월해집니다. 삶의 중심이 단단하면 타인과 세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던 어른이 바로 이렇게 포용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홀로서기 심리학>, 라라 E 필딩
"사람들은 더 풍요롭고 자유롭고 똑똑해졌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오히려 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럴수록 답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리빙:어떤 인생>은 일본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키루>를 각색한 영화이다. 각색을 맡은 이는 <남아 있는 나날>로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이 영화는 삶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며, 기계처럼 반복적인 일상을 살던 런던 시청 공무원 윌리엄스. 자신에게 살날이 불과 몇 달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술과 유흥에 빠져보고 돈도 흥청망청 써보지만 허무함만 느낀다. 그러다 문득 사무실 책상에 먼지 쌓인 채 놓여 있던 서류 하나를 생각해 내고, 남아있는 나날을 그 일을 위해 희생한다.
이 영화는 죽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경험하고, 꾸리고, 만끽하며 누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영국의 풍경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이런 장면을 두고 '영상미가 뛰어나다'라고 말하는 걸까. 감독이 영화 보다 사진을 먼저 배웠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클래식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 역시 영화의 감동을 배가 시킨다.
주인공 빌 나이의 냉소적인 유머와 속내를 알 수 없는 영국 신사 연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웃긴 춤을 추던 할아버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진중하고 깊은 연기도 훌륭하게 소화하는 배우라는 걸 새삼 느꼈다.
윌리엄스는 인간의 인생과 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건 결국 타인을 위한 행동이란 걸 깨닫는다. 그래서 동네에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어달라는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더러운 시궁창도 저벅저벅 걸어가기도 하고, 비를 맞으면서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다른 부서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하루 종일 담당자 옆에 앉아 기다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책상에 앉아 서류만 만지작거리며 일했다면 이제부터는 본인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결국 그는 어린이 놀이터 만드는 일을 성공시킨 후 눈이 내리는 저녁, 놀이터 그네에 앉아 'Rowan Tree'(마가목)를 혼자 부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오! 로언 트리, 로언 트리
내 소중한 나무여
고향과 어린 시절이 마법처럼 얽힌 가지
첫 봄을 알리는 너의 잎새
당당한 여름 같던 꽃봉오리
모든 시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였다네
가지에 새겨진 수많은 이들의 이름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소중한 이들
영원히 잊지 못하리
주인공이 직접 부르는 이 스코틀랜드 민요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귓가에 남았다. 노래 속 가사처럼 윌리엄스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중심이 단단해서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어른.
삶의 중심이 단단하다는 것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싶은 어른은 아마도 이렇게 조용히 자기 몫의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