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떠올린 덕수궁의 시간

꿈을 이루는 필사, 819일

by Jihye
온전한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가 본래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키고 온전히 되찾아 자유로운 삶을 힘차게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녀온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가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뛰어난 우수성을 찬란하게 꽃피우리라.
-<독립선언서 말꽃모음> 중 3·1독립선언서, 이주영

제107주년 3·1절인 오늘.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그 외침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바로 3·1운동이다. 이 운동은 단순한 만세 시위가 아니었다. 3·1운동 정신은 같은 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고,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 체제를 세웠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 대한민국 헌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3·1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작을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공식 발표는 병사였지만 당시 민중 사이에서는 여러 의혹이 퍼졌고, 그만큼 사회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었다. 3월 4일 장례식 날, 수많은 인파가 경성에 모였고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대한문을 나서는 견여 행렬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현재의 대한문

며칠 전, 남매와 아들 친구를 데리고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왔다.
지금의 대한문 앞에 서니 1919년의 장면이 떠올랐다. 고종의 장례 행렬이 이 문을 지나가던 날,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슬픔은 곧 분노가 되었고, 그 감정은 결국 3·1운동으로 이어졌다. 한 궁궐의 문이 역사의 큰 물결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깊은 울림을 주었.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함께 담긴 궁궐, 덕수궁. 이곳에는 전통 한옥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왜 그럴까? 고종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궁궐을 둘러보면 대한제국의 꿈과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엔 대한제국을 ‘실패한 나라’라고만 생각했고, 고종은 무능한 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덕수궁을 걸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성공한 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

대한제국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 스스로 힘을 키워 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때의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실패의 순간, 덕수궁의 시간을 조용히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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