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시내에서 송도로 넘어가는 길, 연수동에 ‘원인재’란 곳이 있다. 번화하고 붐비는 송도와 달리 고즈넉해 보이는 그 공간이 무척 궁금했다. 몇 달 동안 궁금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만 있었다. 어제는 남매를 일찍 등교시키고 원인재역으로 향했다. 궁금증도 해결하고,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싶었기에.
원인재 입구, 원인재 내부 전경
원인재(原仁齋)는 인천 이씨의 시조 이허겸(李許謙) 공의 묘를 수호하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19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연수동 신지마을에 소재하였으나 1994년 연수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해체되어 현재의 장소인 묘역 옆으로 옮겨져 복원·증축되었다. 이허겸은 고려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할아버지로, 세 명의 외손녀가 모두 고려 현종의 후비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고려의 외척으로, 인천 지역의 호족으로 문벌귀족 시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주요 건물은 교육공간인 돈인재, 기숙 공간인 승휴당과 율수실, 사당인 원인재이다. 외부에 신도비와 시조공묘, 입구에 이인로 문학비가 자리한다. 강당으로 쓰인 돈인재가 가장 크고 돋보였지만, 내 눈에는 수수한 느낌의 원인재가 더 눈에 들어왔다.
돈인재
원인재
지금의 원인재는 전통혼례와 돌잔치, 웨딩 촬영과 돌사진 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운 좋게도 방문한 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 아빠와 아기의 돌사진 촬영을 볼 수 있었다. 100여 년 전의 건축물이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니. 가치 있는 사업을 허가해 준 공무원을 칭찬하며, 귀여운 아기 도령의 사진 찍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인근 아파트와 주변 숲길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연수 둘레길과 승기천도 바로 앞에 있으니 가볍게 산책하듯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이인로문학비, 신도비
안내문
연수 둘레길, 승기천
원인재는 ‘인천 이씨의 근원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단순히 동네 이름이라고 여겼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은 왜 근원을 찾고자 하며 그것을 기념하는지,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왜 고향을 그리워하고 귀환을 꿈꾸는지. 나는 왜 여수 바다를 그리워하는가? 서울에서 차로 5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 여수. 그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은 들어가야 나의 고향 섬 낭도가 보인다. 넓고 푸른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고 우뚝 솟은 산이 뒤에 있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업도 함께 하는 곳. 우리 집은 바다와 이웃들의 집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자리한 빨간 지붕의 시골집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섬 생활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TV에 나오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당장 먹을 수 없고 필요한 물건도 곧장 살 수 없었기에. 도시의 삶을 동경하던 아이의 바람이 닿았는지 우리 가족은 내 나이 11살 무렵 육지로 나왔다. 치킨과 짜장면을 맘껏 먹을 수 있고, 해가 져도 마트에 갈 수 있는 육지 생활이 그저 신났었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특별시의 특별하고 복잡한 삶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처럼 도시 생활은 쉽지 않았다. 녹록지 않았던 첫 직장, 내 맘처럼 안 되는 연애 문제 등의 힘든 일이 휘몰아치니 고향 바다가 너무나 그리웠다. 당장 여수로 갈 수 없어 한강으로 달려갔다. 고향 바다 대신 한강의 품에서 투덜투덜, 구시렁 구시렁 투정을 잔뜩 부렸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육지 생활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해나갈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인생의 고단함을 하소연하고 투정 부릴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주는 정다운 품이 그리워서일 테다. 오랜 시간 서울시민으로 살다가 얼마 전 인천시민이 되었다. 바다가 배경화면처럼 자리한 도시에서 고향 바다를 떠올린다. 처음 하는 엄마 노릇이 버거울 때,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 입사 지원한 회사에서불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인천 앞바다로 달려간다. 연안 부두, 자유공원, 월미도, 송도 솔찬공원. 인천 바다의 품에서 맘껏 투정을 부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시름이 옅어진다. 엄마로, 한 인간으로, 쓰는 사람으로 더 나아지길 마음먹으며 일상을 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