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 역사가 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정보
▪︎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이촌역 2번 출구 or 박물관 나들길 이용)
▪︎관람시간: 월/화/목/금/일 10:00~18:00,
수/토 10:00~21:00(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관람료: 상설전시: 무료, 특별전시:유료(문화가 있는 날 50% 할인)
▪︎주차: 기본 2시간 2,000원 (초과 시 30분 당 500원)-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고
박물관은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우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세계 6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전하여 2005년에 새롭게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총 15만여 점의 소장 유물 중 5천여 점을 46개의 전시실에서 전시한다. 시대와 주제별로 제시된 6개의 상설전시관, 다양한 내용을 선보이는 특별전시관, 관람의 이해를 돕는 전시해설 프로그램, 오감으로 즐기고 배우는 어린이박물관,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실감 콘텐츠 등을 마음껏 누리고 즐길 수 있다.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는 7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이때에는 불을 이용하고,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와 나무나 뼈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였으며, 동굴이나 막집에서 생활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다. 이른 구석기시대에는 고기를 자르고 뼈를 부수거나 열매를 다듬기 위해 찍개와 주먹도끼 같은 단순한 석기를 사용했다. 약 4만 년 전부터는 슴베찌르개라는 석기를 창끝에 끼워 작고 날렵한 동물들을 사냥했다. 구석기시대에는 추운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반복되어 구석기인은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는 약 기원전 8,000년에서 기원전 1,500년 사이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신석기인은 따뜻해진 환경에서 새로운 생존법을 찾아야 했다. 빙하와 함께 사라진 큰 동물 대신 작고 빠른 동물을 잡기 위해 활을 사용했다. 반지하 집에서 살며 열매를 따거나 소규모 농사를 시작했으며,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돌과 뼈로 도구를 만들고, 최초로 토기를 만들었다. 이 토기는 음식을 담거나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바다 건너의 사람들과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
신석기실에서는 집터와 무덤, 조개더미 등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여러 주제로 나누어 전시한다.
기원전 1,500년쯤,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지역에는 청동이 등장했다. 하지만 청동은 매우 귀했고, 일상 도구는 여전히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졌다. 또한 농업이 발달함에 따라 낮은 언덕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았고, 자연스럽게 큰 마을이 생겼다. 이때 형성된 대규모 농경 마을들은 한반도 고대국가를 구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농경의 발달은 공동체 안팎으로 여러 갈등을 유발했고, 이를 조정하는 우두머리가 필요했다. 우두머리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져 권위와 권력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고인돌과 같은 큰 기념물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욱 강력한 국가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나라는 초기철기시대로 들어섰다.
부여·삼한 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이전의 시대를 말한다.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마한, 진한, 변한) 같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규모와 발전 수준은 제각각 달랐고,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저마다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통합과 재편이 일어났다.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 있었던 마한, 진한, 변한의 작은 나라들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고 이후 백제, 신라, 가야로 성장했다.
이 시기에는 철기 생산이 더욱 본격화되어 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삼국 중 맨 먼저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또 고유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서역, 북방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삼국 중 가장 먼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나라를 발전시켰다. 특히, 아름답고 생생하게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담고 있는 고구려의 무덤 벽화는 고구려 문화를 잘 보여준다. 다양성과 개방성, 국제성을 가진 고구려 문화는 백제, 신라, 가야, 왜(일본)에도 영향을 주었고, 나중에는 그 영향이 발해로까지 이어졌다.
백제는 기원 전후 시기에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온조 집단이 마한의 여러 소국을 하나로 합치면서 성장한 고대국가이다. 처음에는 한성(지금의 서울)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그 뒤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과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가던 고구려, 신라, 가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만들어 갔다.
가야는 삼한 중 변한의 옛 땅인 낙동강 중·하류에서 성장했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같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고, 여러 소국이 연맹체를 형성하여 만든 연맹 왕국 단계에서 562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전기 가야연맹(3세기~5세기 초)은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었고, 532년 신라 법흥왕에 의해 금관가야가 멸망하자 후기 가아연맹(5세기 말~6세기 초)의 주도권을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이 되었다.
가야실에서는 풍부한 철과 활발한 국제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한 가야를 만날 수 있다. 가야 각 지역에서 만든 토기는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모아서 전시했다. 이 밖에도 말갖춤(말을 부릴 때 쓰는 도구나 말에 달린 꾸미개), 금귀걸이, 금동관처럼 가야 지역 무덤에서 나온 껴묻거리를 살펴볼 수 있다.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에 있던 진한 12국 가운데 경주 지역의 사로국이 성장한 나라다.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합하여 영토를 확장한 신라는 6세기에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진흥왕 때에는 고구려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고 대가야를 병합하여 신라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대내외적 발전과 무열왕 김춘추의 탁월한 외교 수완에 힘입어 당과 연합한 신라는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그의 아들 문무왕이 668년 고구려를 함락하였고, 676년 삼국통일을 완성하였다.
신라실에서는 현재 경주 대릉원에 있는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을 비롯하여 지배층의 면모를 보여주는 화려한 황금 껴묻거리를 전시하고 있다. 신라 문화의 국제성을 볼 수 있는 유리잔 같은 다양한 외래 유물과 함께 대표적인 신라의 토기와 기와, 무기, 말갖춤도 볼 수 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 지역을 차지하고 하나의 민족 국가를 이루었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융합하고 주변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여 조화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불국사, 석굴암,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최고의 걸작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9세기 이후 권력 다툼으로 왕권이 약화되면서 농민이 궁핍해지고 지방 호족이 일어나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타 견훤과 궁예가 각각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워 각축을 벌였다. 세력이 약해진 신라는 935년 경순왕 때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천년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통일신라실에서는 절정에 이른 불교문화유산을 전시하였다. 또한 당시 수도였던 경주의 주요 유적 출토품과 함께 지방 각지에서 출토된 생활용품도 소개한다. 아울러 주변 국가와 교류하였음을 보여 주는 각종 자기류와 와당 등도 전시하여 통일신라인의 국제적 면모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모아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 동모산 일대에 세운 나라이다. 698년 발해의 건국으로 원산만 이남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양상으로 변화했다. 발해는 당, 통일신라,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발해는 멸망한 뒤에도 많은 유민이 부흥 운동을 하거나 고려로 들어와 활동하며 우리 역사의 한 축을 이루었다. 발해실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며 삶의 흔적이 역사가 됨을 새삼 깨달았다. 선사·고대관의 유물들이 보여 주는 옛날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느낀 점을 잘 기억해 두어야겠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지적·문화적 갈증을 채워주는 문화유산과 자연 풍경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일상의 짧은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특별전시 관람요금이 50% 할인되며, 문화상품(굿즈)은 판매가 10%, 으뜸홀 카페와 사유 공간 찻집의 제조 음료는 15% 할인되니 방문에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