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진행된 퇴사, 출국, 입학식
현재 연재 중인 필름카메라로 기록한 나의 일지 <삼천 원이 나에게 선사해 준 길>가 끝나면 나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일 년 반동안 자격증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 틈틈이 하던 와중에 어떤 건물에 붙은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사정상 디저트 가게를 문 닫게 되었는데 계약이 끝날 때까지 사용하실 분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월세만 내면 사용하게 해 준다고 적혀있었다.
너무 무료한 일상이라 재미가 없었던 찰나였다.
우선 연락해서 월세 비용 먼저 물었고, 그 정도 비용이면 내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돈으로 빠듯하지만 낼 수 있을 금액이었다. 바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 오븐과, 믹싱기가 있는 덕분에 편하게 뭐든 만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마카롱을 좋아하지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가게가 마카롱 가게였어서 내가 연습한다고 문을 열어놓으면 자꾸 손님이 들어오곤 했다. 심지어 학교 영어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가게 사장님에게 마카롱 레시피를 얻어 하루 종일 마카롱만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이 조그마한 과자 한 종류 만들려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구나 싶어 작은 게 왜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댈 때도 있었지만
내 손으로 만들고 난 이후로 절대 마카롱에게 투덜거리지 않게 됐다.
오히려 마카롱을 취급하는 매장에서 더 유심히 보기도 하고 찾아서 먹어보기도 하며 정말이지 좋아하게 됐다.
마카롱이 비싼 건 아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야…! 라며
그렇게 보내던 와중에 생각보다 빨리 이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는 분이 나타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니지 당연히…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틀 전 냉장고를 가득 채운 버터와 생크림, 크림치즈를 포함한 여러 식재료를 다시 집으로 옮기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다시 시작된 자격증 공부와 아르바이트는 너무 지겹게만 느껴졌다. 그 시기에 갑자기 코로나가 확산이 되면서 티비 속 이야기 마냥 일 년 넘게 일해온 매장이
순식간에 폐업을 하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은 공중에 혼자 붕 떠있었다. 안 되겠다. 이제 진짜 취업을 하자 싶어서 취직활동을 시작했다.
가릴 때가 아니긴 했지만 삼사일 일 해보니 여긴 아니다는 생각이 확 들어 죄송하지만 나는 이 가게에 맞는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 돈 안 받고 사과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다른 곳 면접이 잡혀서 갔는데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느낌을 확 받았고 예상대로 나는 그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을 했다.
아침 여섯 시까지 출근인데 내가 일을 잘 못해서 다섯 시까지 출근했다가 주말에는 새벽 세시에도 출근하기도 했다.
그러면 나의 상사, 그녀도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근하곤 그랬다. 내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집에 차가 없어서 늘 걸어 다녔는데 어느 날 똑같은 시간에 운동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아가씨 매일 어딜 그렇게 혼자 돌아다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라고 아침부터 걱정도 해주신 적 있다. 정말 차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결정하기 쉽지 않더라.
이른 시간 출근하면 껌껌한 건물 내에 쥐도 본 적이 있고, 문 앞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노숙자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쩔쩔매기도 했다.
하루 이틀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니 점점 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일 끝나면 바로 집에 가도 됐지만 나는 시간이 남으면 무조건 청소와 새로운 메뉴들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미리 계량을 해둔다거나 어떻게든 시간을 채웠다.
시간을 채우는 날이 오히려 여유로운 날이었고, 대부분 잔업이 많았다. 그래서 팀 하나 없이 혼자 아등바등하는 나를 다른 직원들이 많이 챙겨주었다.
밥 해먹이고, 커피 태워주고, 심심할까 봐 말 걸어주고… 나중에 팀원들이 생기고 나서 더욱 느꼈지만 혼자였을 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는 늘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이 따라온다.
살짝 벌여둔 일을 처리한다고 2-3개월 정도는 돈을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한 사 개월 차부터 천천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원체 돈을 모으는 습관이 없다 보니 적금 들고도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돈이 없으면 삶이 불편함을 넘어 불행해지기도 한다는 걸 깨닫고 나선 벌이를 놓아본 적은 없지만 미래에 투자해 본 적도 딱히 없었다.
원하는 대로 살았던 내게 미래를 위한 투자는 들어놓은 버릇이 없어 솔직히 첫 달, 두 달은 참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이라면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업장에 가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만 가진 것 없는 내 형편상 집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학업과 업장에서의 경험은 분명 다를 테고 나는 우선 정석에 맞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궁금했던 걸 물어봤을 때 ‘원래 그래요, 그렇게 하면 돼요 ‘라는 답변이 너무 형편없게 들렸다. 팀원들이 생기고 모르는 게 생기면 잘 알려주고 싶은데 나 조차도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원인은 내가 밀가루를 만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의문만 품고 넘어가는 상황이 싫었고 발전이 없다고 스스로 느꼈다. 자꾸만 추측만 하고 해소가 되지 않아 갑갑해하는 나 자신을 보니 확신이 섰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돈을 모아 유학을 떠나자!라고 결심을 하게 된다. 말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을 거 같아 주변에 알리고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에 앞섰다.
그때 나의 월급은 196만 원이었다. 나는 내가 일하는 것보다 월급이 적다고 생각을 했고 이왕 나간 거 돈을 더 벌자 싶어 회사 몰래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벌이를 두 개로 나누고 나서부터는 돈 모으는 속도가 빨라져 갔다. 그리고 다행인지 돈을 쓸 시간이 정말이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간에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당장 가는 게 아니라 시간적 여유는 있어서 1급까지 여유롭게 딸 수 있었다. 조금 고민이 됐던 건 사 년 차를 앞두고
일 년 더 하고 갈까 아니면 지금 갈까? 되게 고민이 됐었다. 그렇지만 등록금과 이 년 동안 지낼 생활비는 얼추 마련한 덕에 시간을 더 벌자 싶어 딱 사 년 차 되던 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날이 4월 1일이다. 그리고 4월 2일 출국을 하였고, 4월 3일이 입학 가이던스 날이었다. 집도 계약 못하고, 짐도 5kg 들고 왔지만 이제야 한 발짝 내딛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어쩌면 설렘보다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게 불안정하게, 나답게 일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