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던스와 입학식
일본에 도착한 다음 날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아침,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학교로 걸어갔다. 설레는 마음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무겁게 자리 잡았고, 이십여분을 걸어가며 막막하다 못해 착잡한 마음을 애써 감춰보았다.
내가 일본어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학교에 도착했더니 유학생들은 잠시 따로 모여 실습화, 실습복 사이즈를 재고 안내받은 강당으로 이동했더니 검정 정장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착석해 있었고 얼마 안 있어 강당이 검정 무리들로 꽉 채워졌다. 전원 출석을 확인한 후 오리엔테이션은 환영 인사와 힘께 입학식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배정받은 반으로 갔다.
집을 못 구해서 제대로 된 주소가 없어서 임시 학생증을 받았다. 일본에 오려고 자격증 1급을 따고 왔음에도 실상으로 쓰려고 하니 입 밖으로 나오질 않고, 귀도 전혀 뚫리지 않았다. 다 큰 성인 어른임에도 언어도 안되고 명랑한 아이들과 섞여 지내려고 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내가 입학한 작년부터 블로그에서 유명한 제과 선생님들이 본교로 돌아와 함께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실제로 만나 뵙고 얘기를 나누는데 너무 신기했다.
입학식은 이틀 뒤 어느 큰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부모님들과 함께 온 학생들도 많았다. 벌써 나이 차가 확 느껴진다…
이제 정말 나의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스무 살 때, 열심히 공부했던 나는 유학 준비 막바지 즈음 아빠의 사업이 영화 한 장면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무산이 됐다. 어떻게든 억지로 보내고 싶어 했던 부모님을 보고 나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열아홉 살이었고 지금은 이십 대 후반이며 똑같은 나지만 꿈꾸는 미래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돈벌이를 고민하며 살다 보니 고등학생 때 꿈과 전혀 다른, 아르바이트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시작한 제과 제빵.
돌고 돌아 어쩌다 보니 유학을 가게 되었다. 나를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지내던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내가 감수해야 하고 그 탓을 내게 돌릴 수 있어서, 역으로 나의 선택이 맞았다고 스스로를 조금 더 믿으며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복에 겨운 투정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할 순 있겠지만 내가 쉴 수 있고 신경을 꺼도 되는 나의 장소가 필요했다. 단순히 제과, 제빵을 공부라기 위함이라기 보단 그건 내게 단순 수단의 하나이고 분리되어 나다운 삶을 다시 한번 정리 정돈을 하기 위한 이유가 아마도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수단과 이유가 존재해야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한 덕에 돈을 모았고, 직업에 대한 갈증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어떠한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 여기서도 달라지지 않으면 어떡할까 입학 전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에 쏟아졌지만 임시 전입신고, 휴대폰 개통, 통장 개설 등등 신경 써야 할 곳이 많아 금방 잠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랴부랴 도착해 이것저것 해결해야 했던 바쁜 시간들 덕에 다행히 하루에 필요한 걱정 한 스푼, 안도 한 스푼, 성취 한 스푼 좀 좀 따리로 헤쳐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