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일본 여름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던 날

by 우주킴

집도 이사를 끝냈고, 일본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던 중 여름 감기에 걸려버렸다.

감기에 걸리면 늘 기침이 끊이질 않아 조심했겠만 시험 전에 딱 걸려버렸다.

아무래도 5월 중순부터 초여름에 들어간 뒤부턴 습한 날씨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곤 했다.

땀 흘리는 양에 비해 수분 보충을 안 해서 자주 탈수 상태를 경험하곤 했는데 억지로 마시고 마신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몸이 안 좋아 병원을 가면 나는 늘 면역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이긴 하다.

학교에서 실습 도중에 귀에서 이명이 들리면서 쿵쾅쿵쾅 빨리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렸다. 온몸에 땀이 나고 너무 어지러웠다.

집에서 푹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쉬어도 몸 상태는 낫지 않았고 학교에서 실기 테스트가 있었던 날, 명백한 나의 실수로 재시험을 치게 되었다.

목이 간질간질거릴 때 이 기침은 한번 뱉고 멈추는 기침이 아니라는 징조가 있는데 딱 그 기침이었다. 한번 기침을 하자마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저절로 눈물이 나 개수대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오븐에 빨리 넣는다고 철판 두 판 위에 반죽을 올렸어야 했는데 한판 위에다 올린 사실을 난 울리는 오븐을 열다가 알았다.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지적을 해주시는데 같은 유학생분이 너무 잘하셔서 심지어 같은 키무라서 나중에야 부끄럽긴 했는데 당시엔 그 와중에 또 기침 나올까 봐 얼이 나가있었다.

그을러 진 비스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짜증이 나지 않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은 학교 가자마자 열쇠마저 잊어버리는 반복된 실수에 나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러 올랐다.

요새 들어 건망증도 전보다 심해지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래서 메모장도 들고 다니는데 열쇠를 잊어버린 이 날은 용서할 수 없었다.

쌓여왔던 이 감정이 폭발하면서 선생님께 찾아가 나 오늘 수업 못 들을 거 같다고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하는데 약해질 때로 약해진 정신 상태가 서서히 무너져 내린 거 같다. 눈물이 났다.

원래 눈물을 잘 안 흘리는 사람인데도 집에 와서 침대에 눕자마자 눈물을 질질 흘렸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숨을 자연스럽게 내쉬는 거처럼, 아니 무언가에 체념한 사람 마냥

그냥 아무 표정도, 흐느낌도 없이 눈에서 눈물만 났다. 그리고 오후부터 근육통과, 잔기침, 두통이 심해져 일어나자마자 병원을 가게 되었다.

열을 재보더니 코로나, 독감 검사를 하자고 하셔서 코를 찔렀고 다행인지 음성 결과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지금 몸 상태가 너무 허약한 상태라 수액을 맞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병실에 누웠고, 주삿바늘이 꽂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내가 왜 이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은 했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앞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두세 배는 걸은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가만히 누워 우선 담임 선생님께 보고 하고 다음날까지 쉬었다.

다른 거 입댈 것도 없이 모든 게 나의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의 탓이라고 할지라도 넘어지는 건 잘못한 게 아니라고, 여기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거라는 걸

잘하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배워보고 싶었고 삶 자체를 조금 더 즐겁게 살아보고 싶어서 일본에 온 거를 잠시 잊고 지냈던 거 같다.

그날 밤 나는 동시에 불안함에 휩싸여 나의 과거를 오랜만에 들춰보았다.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 했던 것, 불안정했지만 자유로웠던 모순적인 생활, 카메라만 들고 편도 티켓을 끊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시절,

홧김에 해보자 싶어 저질러버렸던 과자집, 그리움에 사무쳐도 내뱉을 수 없었던 지난날, 바다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날, 남들이 말릴 정도로 일하며 견뎌본 최근 삼사 년,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욕구를 억누르고 돈만 모았던 것, 나를 인정해 주신 눈빛과 애정 그리고 신뢰가 쌓이던 시기, 회사 다니면서 좋아하는 빵과 과자를 배우고 싶어 일 끝나고 틈틈이 일본어 공부했던 날.

나는 쓰러질 때 즈음 도망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대로 나는 이미 일본에 왔다.

이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을 하고 감정 조절을 잘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 곳에 고여있지 않도록, 몸과 마음이 온전하게 흐를 수 있도록, 아무 이유 없이 최고의 유학 생활을 보내야지 라는 목표가 아닌 웃음 가득한 나다운 유학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찝찝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여러 기억과 감정을 쫓아갔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지금 이 유학 생활도 일본의 여름은 대단한 더위였다며 회상하겠지, 과연 열쇠 잊어버려 치밀어 올랐던 분노를 기억이나 할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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