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자마자 기분 좋은 향과 모양, 형태
토요일 초저녁의 루틴이라고 하면 단연 빨래와 청소다.
욕실 청소까지 끝났을 때 즈음 두 번째 빨래, 이불을 걷어 맨션 앞 세탁방으로 가지고 간다.
건조기를 돌리는 동안 남은 청소를 마무리 짓거나, 빨리 청소가 끝난 날은 동네 산책을 한 바퀴 걸어본다.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과 따뜻한 감촉의 세탁물을 차곡차곡 갠 다음 집으로 가지고 와 침대 커버를 새로 씌우고, 그 위에 이불을 펼친다.
옷도 이불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상태, 나는 이불속 저 깊숙이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빨리 자리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곤 한다.
청소가 전부 마무리되면 얇고 긴 향초 하나에 불을 붙여 베란다로 간다. 멍하니 타들어가는 향초를 바라보며 생각을 가라앉힌다.
다음 날, 책가방에 실습복을 넣을 때 전날 차곡차곡 개 놓은 옷을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세탁할 때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고, 향수도 뿌리지 않아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진 않지만 현관을 열고 방으로 들어올 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향이 있다.
그 향에 이끌려 빨리 씻고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포근한 온기가 남아있는 향이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없었던 향이 이젠 집안 곳곳에 배였다.
달달한 향이 아니다. 쌉싸래함이 감도는 향이다. 지금 같은 초겨울 이젠, 바깥보다 집안 공기가 훨씬 차 집에 들어와 숨 한번 크게 쉬면 코가 시릴 정도이지만
그 틈으로 따라오는 집 냄새가 묘하게 좋다.
우리 집은 크기에 비해 가구와 물건이 많이 없는 편이다. 중간중간 텅 비워보이는 구석이 꽤나 있고, 살림살이에 센스가 있는 편도 아니라서 잘 꾸미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집의 크기와 그 안에 있는 물건의 양이 꼭 비례하거나, 결정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쓸쓸해 보이긴 해도 공간은 물건을 채운다고 곧바로 쓸모를 얻는 것도 아닐뿐더러 비워진 자리야말로 무언가를 담아낼 여지를 남길 거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채우기보단 그곳을 자주 쓸고 닦는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달리 일본에서는 쉬는 날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보다 더 청소에 힘쓰고 있다.
에어컨, 배수구 청소도 부끄럽지만 일본에 와서 처음 해봤는데 한국에서 그 얼마나 편한 시간을 보내왔는지 문득 엄마에게 고마울 때가 많다.
한국에서 생활과 달라진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는 점이다.
나는 직장과 퇴근 후 아르바이트에서 매번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었기도 했고, 집 근처에도 맛있고 저렴한 카페가 많아서 음료에 대한 갈증이 크게 없었는데
일본에 와서 처음 커피를 마시고 적잖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우선 핸드드립식 커피가 훨씬 많다는 점 그래서 맛과 향은 확실히 특색 있지만
늘 기계로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는 드립 커피가 맛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는 있으면서도 좀 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한국 카페 커피가 너무 그리워지게 됐다.
산미보단 고소한 맛이 깔려있는(가끔은 탄맛도 나는 ㅋㅋ)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해서 사 먹기에 부담이 안 되는 아침용, 후식용 커피…
일본에선 커피 두 잔 사 먹으면 벌써 1000엔 하고도 더 넘어가버려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편의점 커피도 맛있는 건 있다! (세븐 일레븐 자판기 커피는 한국 사람도 인정한 맛!, 라테가 정말 꼬숩다)
원두만 사서 드립으로 내려 마실까 싶어 알아보다가 모카포트의 존재가 생각났고 바로 사서 사용해 봤다.
나는 그저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모카포트를 사용한 첫날에 온갖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잘 만들어 마시고 싶어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커피를 내렸던 기억이 있는데 확실히 모카포트를 사면서 받은 원두 보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산미가 적고 고소한 원두로 내려보니 전혀 달랐다.
이 모카포트는 내가 일본에 와서 나의 삶의 질을 올려준 물건 중 다섯 번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매일 같이 사용한다.
특히 대청소를 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릴 때면 그 향에 취해 오늘을 대하는 마음이 벌써부터 즐거우니까!
그 여백의 공간말인데, 언젠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 진열장을 하나 들이고 싶다.
진열대 위에는 캡슐 커피 머신을 올리고, 그 안쪽에는 좋아하는 그릇과 컵을 잘 보아게 정리해 두는 것, 그 상상을 하면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