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행을 개의치 않는, 스스로의 최악이 되어서라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간단했지만, 그 만큼이나 얻는 것들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서 일침을 날린 그는 그저 하루종일 들리는 그 말에 귀찮았기 때문에 일침을 날린 것이 아닐까.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괜찮다는 말은 거짓이었고, 기만이었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짓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 나는 나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가려온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의 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그것이 힘들지 않다고, 엄살이라고 외면했던 끝에는 결국 닦아내도 남아나는 비릿한 혈향 뿐이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찝질하고, 비릿한 향을 토하면서도, 억지로 입에 집어 넣어 삼키는 광경. 스스로가 자신에게 선물하는 지옥변을 불태웠던 나는 또 다시 비어버린 껍데기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살아간다. 지금부터 앞으로도, 나는 항상 나를 긍정하고 살아가지는 않겠지. 현재 스스로의 불행을 비웃고 살지는 않을 지언정, 나는 금방 또 다시 나만의 지옥변을 만들어, 내 마음 어딘가에 장식하여 관상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지옥변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나는 최악의 악으로 바뀌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자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거짓으로 가득한 최선의 말들을 최악의 말들로 바꾸어 놓아야 했다. 몸에 못을 박고, 멍을 남기는 것을 그만두고, 그 추악한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독한 다리를 직접 움직여야 했다.
나는 겁쟁이에 비겁자였다.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보고 스스로의 귀로 듣는 것을 무서워 하는 비겁자가 바뀔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덜덜 떨리는 다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손수 갈기 갈기 갈라낸 이 손으로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비어버린 내 몸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자신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도,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드는 심판자이자, 판사였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뒤틀린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악이니, 선이니, 그런 것을 정하며 우리를 더럽힌다.
부서진 세계를 마주보았다. 가루가 되어버렸던 세계가 뭉쳐져 형태를 갖춘다. 숨이 턱하고 막힌다. 사슬은 이미 내 몸을 쥐어 터뜨리는 사슬이 되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고통스럽다고 멈춘다면, 자신은 항상 같은 곳에서 멈추고 말 것이 틀림 없으니까. 나는 스스로를 죽이며, 스스로의 최악이 되어야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계율들, 자신만의 팔 다리를 전부 때어놓고, 전부 새로 만들어야 했다.
새로 만든 다리로 걷는 것은 무섭지만, 두려움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번 그 다리가 부서졌어도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살아가고 싶다는 이기 주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방탕함. 무언가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심함. 그 모든 것을 합쳐놓았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제 가루 밖에 남지 않은 이 다리를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이제와서 그러는 건 내가 만들어 놓았던 계율에 반하는 최악의 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웃으며 내 죄악을 세어가기로 정했다.
자신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다. 최악의 악. 최선의 선을 만들어, 그 둘을 비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었다. 계율을 만들어 자신을 규제하며 그걸 나침반 삼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사람은 나침반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만다. 산산조각난 나침반은 다시금 모을 수 없다.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어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모를 때. 그럴 때는 자신을 믿고, 자신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할 선택지를 골라보자.
만약 자신의 악과 선을 구별할 수 없을 때가 온다면,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를 골라도 괜찮을 것이다. 언젠가 경계는 뚜렷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