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이젠 세상에서 느낄 점이 없어."

-"그건 네가 우울해서 그런 거 아닐까?" "누가 몰라서 묻냐고."

by 인간실격

...뭐, 우울이란 소위 말하는 자캐딸 캐릭이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기분이다. "이길 방법도 없는데 개빡치게 유치한 모습으로 공격하는 적"이 눈 앞에 있다면 항상 불쾌감을 가져온다. 어느 날에는 망각을 우울의 재물로 사용하지를 않나, 언제는 과거를 가져와 망각을 지워내지 않나, 또 또 언제는 이 바뀌지도 않는 작은 세상의 비극을 가져오지를 않나... 젠장 맞을.


위의 우울은 행동을 바꾸면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도 마냥 쉽지는 않다. 우울은 언제나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놔 내 앞에 던져놓고는 자신이 가지고 놀다 부서졌다며 직접 맞추라는 말광량이 였으니까. 그래, 어느 날이 오든 간에 항상 오는 바람이었다.


바람이라는 기초적인 원소의 구성은 모르지만, 음. 바-람. 퍽 시원할 것 같지만 정작 불어오는 것은 습하디 습한 열대의 것이라니, 대체 조선의 것이란 어디로 떠내려간 것인가... 오, 이런. 화를 보지 마시오. 분명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조금이나마 있을 터이니.


-또 아무 말 대잔치.


음, 정신을 다시 끼워맞춰서. 어쨌든 내 우울의 대부분의 구성은 처음 말했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던 망각이었다.


계속해서 우울하게 된다면 내 존재와 안에 있던 내용물, 쥐똥 만한 그 작은 머리에 들어있던 자그마한 생각들 전부를 까먹고 마니 말이다. 그리고 결국 남은 것은 생각이 아닌 우울이 흩뿌린 조각들 뿐. 그걸 건드리고만 그 날의 나에게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은 없었다.


어렵게 말해서 망각. 쉽게 말해서 건망증이다.


나는 쓸데없는 걸 생각하는 걸 주로하는 허우대 같은 인간이다. 마침 모든 걸 잊게하는 우울도 함께하니까,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결국 기억력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인내심이었을 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나에게 주어야 했던 적절한 관심이었을 수도 있었다.


사람이 가져야 하는 표현들이 점차 사라진다. 오른쪽부터 나열해왔던 것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져 내린다. 와르르 무너진 그것들이 내는 소리는 애탄이었을까, 원성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주였을까.


-진정은 용서보다 어려운 법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닥 좋은 삶을 산다고는 할 수 없었다.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찬란히 빛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은 바뀌지 않았다고 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은 썩어문드러져서는 더 이상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내 눈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항상 이런 법이었다. 언제나 쓸데없는 생각을 던지고는 자신 혼자서 재미있을 법한 생각들을 하며 존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인생에 지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내 머리에서, 이젠 더 이상 감상이라던가 객관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가뭄이 오고 만 것이다.


머리는 태양으로서 내 감정, 감성, 감흥, 그 모든 것을 매마르게 만들었고, 나는 그 잔혹하기 시리 따스했던 태양 아래에서 멍을 때렸다. 몸이고 영혼이고 전부가 불타도 상관없을 정도로 태양은 밝았다.


허나 그 아래에 서있던 시간만큼이나 내 몸은 그을려졌고, 이젠 무엇이 그림자고 무엇이 실체를 가진 몸인지 알 수도 없게 바뀌었다. 그런 느낌이다. 절대로 그렇다고 단정하기 싫다. 오글거려, 기분 나빠. 불쾌함의 덩어리.


그게 끝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서 살면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정작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침반은 부서졌고, 길안내를 해줄 사람은 스스로 내쳤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이번 수학 여행에서는 전혀 기쁨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썩은 표정으로 다녀버렸다. 친구들은 훤히 웃는다. 저것이 나를 비웃는 조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나를 봐다오. 모든 것이 곪아 떨어진 나를 보며 웃어다오. 그것만으로 나는 모든 책임을 다한 것 마냥 기쁘니.


그저 사람들에게 비웃음 사고 잔뜩 술에 취한 채로 살아가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다,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다... 손으로 천천히 떼어내던 꽃잎이 떨어지고 비산하며 스러진다.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썩 불쾌하다.


아, 내가 전할 수 있는 최선의 교훈이 될 만한 말은 무엇이 있을까. 브런치북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사람은 살고 싶어서 세상을 살아간다. 살고 싶지 않다며 아래를 바라보는 인간일 지라도, 삶에 대한 집착은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다. 불행이 찾아온다 한들 어떠하리, 슬픔이 찾아온다 한들 어떠하리. 그저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따라오는 죄악과 함께 살아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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