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간 히치하이커
당시 12억의 인구, 인도를 마주한 불안한 영혼은 앞으로 펼쳐질 삶의 여정을 그 때는 결코 알지 못했다. 하수도의 썩은 오수에서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냄새와 지저분하고 어수선 했던 델리 공항의 텁텁한 공기에 숨이 정지 될 것만 같았다. 델리근교로 향하는 택시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바라본 새벽 도시의 정경들은 더위마저 잊게 하는 마법처럼 다가왔다.
자전거 릭샤를 움직이는 까만 피부의 깡마른 체격의 인도 아저씨, 수도 델리의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퐁퐁 검은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오토 릭샤의 엔진 소리, 낯설고 투박한 50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택시들, 창문이 닫히지 않는 색 바랜 버스들, 느릿느릿 걷고 있는 소와 달구지, 벌 떼처럼 몰려다니는 스쿠터들은 마치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게 했다.
뒤엉켜 부딪힐 듯 그러나 결코 충돌하지 않는 무질서 속의 교통질서를 지켜보며 인도의 전부를 느낀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대한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위치한 무수리에 도착했을 때 나의 거만함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 휴양도시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영국고위 관료들의 여름 휴식지로 개발된 곳 이였다. 그 곳에서 멀지 않는 데라둔에 살고 있었던 아엥가 선생님의 제자 부부가 소유하고 있었던 작은 호텔에서 바라본 거대한 산 위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의 가슴은 알 수 없는 희열로 채워지고 있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인도 남부지역의 사람들의 얼굴빛과는 사뭇 다른 서양인의 피부 색깔과 골격을 닮은 환한 얼굴빛의 아리안의 후예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분위기를 제압 할 정도로 귀티와 부티가 난다.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로서 나라도 구제 할 수 없다는 가난한 거리의 인도인과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노란 얼굴의 아시아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서양인들과 자연스럽게 친숙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세련된 인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서양인에게 더 호감을 보이는 모습에 일종의 인종차별처럼 피부에 와 닿는다. 이백년 동안의 식민통치 시대를 살아오면서 영국인들에 대한 반발만이 아니라 서양을 오히려 동경하고 있는 것일까. 식민의 역사를 지울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의 일부 의식 속에 아직도 그 시대에 식민통치에 협조하면서 경제적 여유를 누렸던 자신의 신분을 아쉬워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이들이 있듯이 말이다.
누군가는 탐욕과 분노, 시기와 질투, 음모와 배신, 번민과 좌절로 불타는 인간의 마음을 연료로 지구가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친절했다. 길을 물으면 결코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안내해준 대로 도착한 곳이 다른 곳이었다는 사실 앞에 여행자는 혼란스러워지기 일쑤다!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란 말인가? 아니면 친절하고 싶어서 일까?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경험은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여행 경비를 아껴 보겠다며 3등 칸 열차에 끼여 앉아, 반짝이는 눈동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장난스럽게 그들을 마주 응시해 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린 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종종 여행자들은 한 눈을 파는 짧은 한 순간에 카메라도, 벗어 놓은 운동화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한편 열차에서 우연히 점잖은 인도인을 만나는 행운은 집으로 여행자를 초대하는 호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반면에 인도는 거리에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죽는 사람들이 인구의 30%로 약 3억이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길거리에서 똥을 싸면서도 피하지 않는 아이들의 시선에 난감하기 일쑤다. 외국인을 보며 해맑게 웃는 그들의 행복한 얼굴은 순간 충격으로 다가온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그들의 방치된 삶의 모습에 혼란스러워진다. 체념인가 아니면 초월인가? 앗! 인도..., 그 판단은 내 삶의 몫 이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