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뒤집어 쓰는
나는 늘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떠도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귓가에 닿는 이름조차 내게는 타인의 부름처럼 아득하다. 마치 내 것이 아닌 낯선 옷을 억지로 걸친 채 서 있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조차, 내면은 늘 불안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있다. 억지로 미소 짓고,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며 행복한 사람의 가면을 쓴다. 그러나 그 모든 웃음은 유리잔처럼 얇디얇아서, 금방이라도 깨어져 산산이 흩어질 것만 같다. 말이 많아지는 건, 결국 불안이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오는 것임을 안다. 그러다 지쳐 고개를 떨구면, 다시 익숙한 공허함만이 나를 감싼다.
공허.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마저 앗아가 버리는 잔인한 도둑이다. 현실은 발밑에 무겁게 깔려 있는데, 나는 텅 빈 껍데기처럼 하릴없이 떠다닌다. 그럴 때마다 팔목 위의 오래된 흔적들을 본다. 긴팔티에 감춰진 선명한 흉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현실이 또렷해지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생생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생생함조차도 잠시뿐.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면, 나는 밝은 척, 괜찮은 척, 여유로운 척을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소진하다 보면, 더 이상 내 안에는 그 어떤 여유도 남아 있지 않다. 이미 모든 힘이 바닥났는데도, 신경은 늘 타인의 시선과 감정에 묶여 있다. 그렇게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도,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거절하면 미안함이 밀려오지만, 동시에 ‘이 정도쯤은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품는다. 미안함과 당연함 사이, 그 위태로운 줄 위에서 나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어쩌면 나는 지금, 끝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 애매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모든 것이 확실하게 끝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곤 하지만, 이 모호한 경계 속에서 여전히 나는 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나는 여전히 공허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내 안의 진심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감정들이 잠시나마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듯하다. 아마도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은 채, 이 애매한 삶을 계속 붙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애매함 속에서 언젠가, 아주 작더라도 나 자신을 향한 온전한 여유 한 조각, 진정한 쉼을 찾을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쉼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내 안의 고요가 마음껏 숨 쉴 날이 올지도. 하지만 아직 난
이방인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