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도전하는 용기

by 서도현

과거는 흔히 지나간 시간, 되돌릴 수 없는 기록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역사가 카(E.H. Carr)가 말했듯, 과거는 여전히 현재 속을 걸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매 순간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판단은 과거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

고, 기억은 무형의 자산이 되어 삶의 궤적을 규정한다. 그렇다면 '과거는 현재를 도울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근원적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과거를 짐처럼 여겼다. 실패와 상실, 그리고 차마 얼굴을 들기조차 괴로운 장면들이 마음을 사로잡아 현재의 숨통을 죄곤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모든 기억이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는 사실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과거는 무심한 연대기가 아

니라, 정체성을 형성하는 생생한 텍스트였다. 다만 그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그것은 짓누르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단단히 버틸 수 있는 기둥이 되기도 한다.


문학은 이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마르셀 프루스트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그의 역작에서 마들렌 향기 속 비자발적 기억을 불러내며, 과거가 현재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과거는 단순히 회상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될 때 현재를 확장한다. 반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은 과거의 사랑을 집착과 미화로만 붙잡아 현재를 파괴한다. 두 사례는 명징하게

말한다. 과거는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 관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해석이다.


역사 또한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의 폐허와 독재의 그림자는 집단적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독일이 나치의 범죄를 철저히 기록하고 반성한 것은 미래를 위한 강력한 안전장치가 되었다. 과거를 도외시하거나 왜곡한 사회는 똑같은 비극을 반복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쓰라린 실패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반성과 성찰의 토대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과거는 동일하다. 나는 긴 시간 우울과 불안 속에서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긴 시간 나에게 ‘우울’이라는 감정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먹구름 같았다. 좋아하는 웹소설에몰입해야 할 때도, 귓속을 파고드는 이명 소리만큼이나 무겁게 짓누르는 건 무기력 그 자체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허다했고, 학업은 진창에 빠지기

일쑤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절망감에 압도되곤 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그때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미래든 뭐든 다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도망치듯 외면했으나,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은 짐에서 벗어나 자원이 되었다. 지독하게 어둡고 길었던 터널 끝에서 아주

작지만 누군가 내민 손을 붙잡았을 때, 혹은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과거는 더 이상 내 몸을 짓누르는 족쇄가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을 욱신거리며 아프게 했던 ‘우울’의 경험은 나를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웹소설을 쓸 때 주인공에게 더 깊은 감정을 불어넣고, 디자인 작업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숨겨진 의미와 '아픔'을 담아내려 애쓰게 되었다. 과거의 우울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처럼 다른 사람에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통역사”의 꿈을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먹구름 같던 시간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디딤돌로 변모했다. 끝내 나는 깨달았다. 과거란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텍스트라는 것을.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과거가 곧바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태도로 그것을 맞이하고 어떤 언어로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는 평생의 상처로 간직하지만, 또 다른 이는 그것을 교훈 삼아 성장한다. 과거가 빛이 되는지 어둠이 되는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사유와 선택에 달린 셈이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맴돌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과거를 지운 채 새로운 현재를 세울 수는 없지만, 그것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현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과거의 화해가 곧 현재의 건강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과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원이다.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내일을 견인하는 밑거름이다. 우리가 자신의 과거와 정직하게 마주할 때, 현재는 더욱

단단하고 따뜻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미래의 우리는 오늘을 과거라 부르며, “그때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나를 구원했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런 나의 다짐과 달리,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언제부턴가 거창한 무엇인 양 꾸며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실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것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다. 과거는 현재를 향해 조언을 건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오로지 현재의 몫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미래를 향해 조언을 남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타인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낼린 결론은 이렇다.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사색과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의미 있는 과거, 그 과거만이 현재를 붙들어줄 힘이 된다. 상처마저 지혜로 전환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 용기야말로, 과거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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