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워싱턴의 첫인상은 ‘낮고 단단함’이었다
워싱턴 D.C. 에 도착해 짐을 대충 정비하고, 우리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숙소는 관광지 근처로 잡았다. 이동을 최소화하고 싶었고, 그 대신 돈을 조금 더 냈다. 오늘은 이동한 날이니 멀리 욕심내지 말자고, 숙소 근처만 가볍게 움직이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국립항공우주박물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워싱턴의 일정은 전반적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중심이 될 예정이라, 첫날의 시작으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티켓을 예약하고 입장했다. 폐장 한 시간 전쯤 도착해 ‘짧고 굵게’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워싱턴 D.C. 가 수도라서인지, 박물관들이 무료로 운영되는 점이 좋았다. 복잡한 절차 없이 사람들 흐름에 섞여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비행체들이 전시장 안에 걸려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격납고 같았다.
솔직히 나는 비행기나 우주선에 큰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대신 동생이 더 신나 보였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체를 보며 눈이 반짝였고, NASA가 침팬지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 사용했다는 캡슐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역사적인 부품들이 눈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전시 공간 한쪽에 우주비행사가 남긴 문구가 있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짧은 문장인데 묘하게 오래 남았다.
한 사람이 내디딘 한 걸음이, 결국 모두의 방향을 바꾼다는 말처럼 들려서.
우리는 우주선 내부에도 들어가 보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모든 관광의 하이라이트—기념품 숍으로 향했다. 헬멧도 써 보고, 워싱턴의 명소가 담긴 엽서도 구경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헬로키티가 우주복을 입고 있는 인형을 발견했다. 귀여운 건 지나칠 수 없다. 나는 양손에 인형을 들고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때 동생이 나를 부르더니, 한 인형을 들고 말했다.
“누나, 왜 여기 있어?”
아까 봤던 그 캡슐의 침팬지를 인형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도 웃고, 동생도 웃고. 우리는 갑자기 ‘서로 닮은 꼴 찾기’ 놀이를 시작했다. 여행 중에 이런 유치한 순간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를 보는 눈이 잠깐 ‘우리’ 쪽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폐장 안내 방송이 나오고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다리는 무거웠지만, 밖 공기는 상쾌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정말 많이 걷는다. 내 발로 걸어야 도시의 숨소리와 리듬이 몸에 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걷는 동안 오감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쌓아 두었다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사진으로 꺼내 놓는 편이다.
뉴욕에서 높고 화려한 건물들만 보다가 워싱턴을 보니, 도시의 질감이 완전히 달랐다.
워싱턴은 ‘낮고, 크고, 웅장했다.’ 회색빛 대리석 건물들이 통일감을 만들었고, 하나하나가 무게감이 있었다. 건물 구경이 재미있을 정도로, 동생과 나는 재료가 뭘지, 왜 이런 형태인지, 용도가 뭘지 같은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멀리 국회의사당의 돔이 보였다.
나는 저쪽으로 가자고 동생을 유혹했지만, 동생은 오늘은 너무 힘들다며 내일로 미뤘다. 나도 바로 수긍했다. 멀리서 본 국회의사당은 한눈에 위엄이 있었다. 해가 지고, 간접 조명이 건물을 비추자 마치 도시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워싱턴의 첫인상은 내가 여태 봐왔던 미국과 달랐다.
낮고, 무겁고, 단단하고, 어딘가 질서 정연한 풍경. 반짝이는 뉴욕의 속도와는 다른 종류의 힘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맥도날드를 발견했고, 버거와 애플파이를 포장했다. 입구 근처에 누군가가 앉아 있어 우리는 발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어떤 도시든, 밝은 장면만 있는 건 아니다. 방에 들어와 맥도날드를 먹고 나니 하루가 비로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루틴.
햇반과 물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라운지로 내려가 전자레인지를 사용했다. 따뜻한 밥을 방으로 가져와 먹는 그 과정이, 여행 중인 우리에게는 작은 안정감이었다.
우리는 내일 펼쳐질 일을 아직 몰랐다.
그날 밤은 그저 따뜻한 방에서, 워싱턴의 첫날을 조용히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