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 2

(8) 투어는 취소됐고, 대신 대화를 얻었다

by 윤예진

오늘은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투어를 예약해 둔 날이었다. 어렵사리 잡은 일정이라 기대가 컸다. 내 기준 워싱턴의 핵심은 이곳들이었다. 동생과 옷을 챙겨 입고, 하얀 건물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구글맵이 시키는 대로 가면 도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뭔가 이상했다.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었고, 경찰이 곳곳에 서 있었다. “여긴 들어갈 수 없다”는 표정과 동작이 너무 분명해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발이 방황을 했다. 우리가 가야 할 만남 장소 방향이 완전히 봉쇄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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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까이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국회의사당이랑 백악관 투어를 예약했는데요.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담담했다.

“오늘은 아마 투어가 다 취소됐을 겁니다. 이 근처는 지금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급히 예약 사이트를 다시 열어 문구를 읽었다. 내부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될 수 있다. 그 문장이 내 얘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눈이 많이 와서 그런가 싶었다가도, 이렇게까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이 배치된 걸 보면 단순히 날씨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늘은 투어가 불가능한 날’이라는 건 분명했다.


속상함을 삼키며 다시 경찰에게 말했다.

“이걸 보려고 정말 기대했는데…”


그러자 그분이 말을 건넸다.

“어디에서 왔나요?"

"한국이요."

"한국? 내가 좋아하는 K-pop 가수들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상 대화가 시작되는 느낌. 그분은 “한국 사람들은 유도 같은 거 배우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어릴 때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고, 나와 동생도 태권도를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검은띠 2품이에요.”


그분은 본인도 비슷한 걸 배워봤다고 했다. 경찰이 되기 위해 몸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들이 있고, 본인은 유도를 배웠다고.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경찰과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뉴욕에 있을 때는 NYPD가 늘 무서웠다. 경찰이 보이면 ‘무슨 일이 터졌나’ 하는 불안이 먼저 올라왔다. 덩치가 크고 표정이 무서운 사람들.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워싱턴에서는 처음으로—경찰과 ‘평화로운 상태’에서 말을 섞었다. 그분도 웃으며 말했다.


“NYPD는 되기 어렵지. 그 사람들, 인상 찌푸리고 다녀서 무섭지 않나요?”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진짜 무서웠다.


결국 우리는 백악관도, 국회의사당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시작이 완전히 망가진 기분은 아니었다. 기대했던 일정은 취소됐지만, 대신 예상치 못한 ‘대화’를 얻었다. 스몰토크라는 문화는 여전히 낯설 때가 있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과 잠깐의 온도를 나누는 순간엔 확실히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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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캐피톨 힐 동네를 걸었다.

관광지보다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운 곳. 아기자기한 집들이 이어졌고, 심플한데도 귀여운 분위기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레몬색 집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순간만큼은 계획이 아니라 기분이 여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바꿨다.

로슬린 역으로 이동해 조지타운으로 가보기로 했다. 맛집도 있고, 조지타운 대학교도 구경할 수 있다니까. 오늘의 워싱턴은 ‘예약한 대로’가 아니라 ‘열리는 대로’ 흘러가는 날이었고, 우리는 그 흐름에 올라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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