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 2

(10) 보스턴의 첫날은 솜사탕

by 윤예진

1월 8일.

우리는 오후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간다. 워싱턴에서의 눈과 취소와 우왕좌왕을 뒤로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엔 늘 비슷한 마음이 든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새로 시작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공항에서는 익숙한 절차를 빠르게 끝냈다.

수하물을 부치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끌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미국 국내선은 큰 캐리어를 붙일 때 추가 비용이 붙는 경우가 많아서, 매번 “그래도 기내용 캐리어는 무료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보스턴이 워싱턴보다 덜 춥기를—그런 소망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프런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짧은 순간부터, 이상하게 분위기가 좋았다. 친절한 말투 하나, 여유로운 표정 하나가 여행자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2층 침대가 있는 구조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2층, 동생은 1층. 어릴 때도 그랬다. 우리가 한 방에서 2층 침대를 쓰던 시절, 2층은 늘 내 자리였고 동생은 아래에서 내 침대를 두드리며 장난쳤다. 이불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몰래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짐을 풀면서도 괜히 그때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물건 하나, 구조 하나가 시간을 데려오기도 한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뭐라도 하나 하고 싶어서, 오후 늦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하늘이 너무 예뻤다. 파란 바탕 위에 분홍빛 구름, 거기에 은은한 보랏빛이 섞인 색. 솜사탕이라는 표현이 유치하지 않을 만큼 정말 그랬다. 그 하늘이 보스턴의 브라운 계열 건물들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보스턴은 가로등마저 분위기 있었다.

고풍스럽고 빈티지한 가로등이 거리의 온도를 바꾸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문득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누군가 마법을 걸면 가로등 불이 주르륵 켜질 것 같은, 오래된 영화 속 도시 같은 느낌. 예전에 혼자 여행했던 필라델피아가 ‘역사’라면, 보스턴은 ‘빈티지’에 가까웠다.


첫 목적지는 퍼블릭 가든이었다.

꼭 가봐야 한다고 들었던 곳. 숙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걷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우리는 보스턴의 하늘을 배경으로, 도시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걸었다.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정작 내 눈은 화면보다 풍경 쪽에 더 머물렀다.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은, 셔터가 아니라 시선이 먼저 움직일 때다.


퍼블릭 가든은 생각보다 ‘엄청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했다. 어떤 사람은 하키 스틱 같은 걸 들고 공을 굴리며 달렸고, 어떤 사람은 뒤로 미끄러지듯 타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이 얼면, 그 위에서 그냥 스케이트를 탄다. 그게 이 도시의 겨울 일상이구나 싶었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도 잠깐 호수 위에 발을 올려봤다.

스케이트는 없었지만, 우리의 여행을 책임지는 신발을 믿고 조심히 걸었다. 살짝 미끄러지며 “우리도 탄다!”라고 우기며 웃었다. 다리 위에 달린 전구 장식도 예뻤지만, 내 눈엔 계속 가로등이 들어왔다. 보스턴의 겨울은, 불빛과 잘 어울리는 겨울이었다.


퍼블릭 가든을 지나 백베이 쪽으로 걸었다.



나무에 전구를 감아둔 거리가 이어졌고, 해가 질수록 창문 안쪽의 주황빛이 하나둘 켜졌다. 가로등이 반짝이고, 건물에 간접등이 들어오면서 “보스턴의 진짜 분위기는 밤에 완성되는구나” 싶었다.


트리니티 교회를 지나 보스턴 공립도서관에 들어갔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공간. 초록색 전등이 줄지어 놓인 열람실은 실제로 보니 더 넓고, 더 조용하고, 더 근사했다. 우리는 공부하러 온 건 아니었지만, 그곳의 공기 속에 잠깐이라도 앉아 있고 싶었다. 노트북을 펼친 사람들이 꽤 있었고, 우리는 추위를 피하며 그 분위기 속에 스며들었다. 도서관 안쪽은 대리석과 벽화,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화려했다. ‘도서관이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우리는 잃어버린 입맛을 찾으러 라멘을 먹으러 갔다.


워싱턴에서부터 이어진 추위와 피로 때문에, 우리는 얼큰함이 필요했다. 줄을 조금 섰지만 금방 들어갔고, 라멘이 나왔을 때 우리는 거의 동시에 국물부터 들이켰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지나 몸으로 내려가자, 그제야 “아, 오늘 하루가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스턴의 첫날은 그렇게,

하늘색에서 시작해 초록색 전등으로 지나가고, 뜨거운 국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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