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 2

(17) 금문교를 자전거로 건너던 날

by 윤예진

이 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하루다. 우리가 금문교를 건너는 것 자체에 거창한 의미를 두고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며칠 동안 이 낭만적인 도시를 경험하다 보니, 금문교는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어서도, 차로도 아니고—자전거로,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낭만으로.


아침부터 우리는 렌털샵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전거 여행자가 많아서인지, 렌털샵도 서비스도 제각각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 자전거 상태가 괜찮은 곳, 무엇보다 오늘 하루를 망치지 않을 곳. 결국 체스넛 스트리트 근처의 한 렌털샵으로 정하고 온라인 예약을 마쳤다.


그쪽 동네는 우리가 알던 샌프란시스코와 결이 달랐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고, 더 ‘휴양 관광지’ 같은 거리. 처음 걷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이 동네를 제대로 하루로 떼어 와야겠다.


렌털샵에서 우리는 고민 끝에 전기자전거 1대와 일반 자전거 1대를 빌렸다. 자전거 보험을 포함해서 약 20만 원의 비용. 전기자전거 두 대면 비용이 더 뛴다. 체력도, 지갑도 타협이 필요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던 애였다. 바퀴에 구멍이 나면 끌고 수리하러 가고, 사장님이랑 인사 나누고, 부품을 만지작거리며 어느 정도의 자전거 수리 정도는 할 줄도 아는 사람. 일반 자전거는 동생이, 나는 전기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묵직해진 가격대. ‘이만큼을 쓰면서까지?’라는 마음이 잠깐 스쳤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우리에게 오래 남을 이야기를 만들어줬다.


출발 전에 직원이 전기자전거 조작법을 알려줬다. 손잡이의 감각이 낯설어서 렌털샵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이제 진짜 간다.” 첫 목적지는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 금문교로 가는 길에 있어, 자전거 코스에서는 거의 필수처럼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휴대폰 거치대가 없어 길을 가다 멈춰서 지도를 확인해야 했다. 동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페달을 밟고, 내가 뒤에서 “그 길 아니야! 이쪽!” 하고 소리치면 동생이 핸들을 틀었다. 길을 모른다는 건 불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게 곧 모험의 시작이었다. 자전거 여행의 묘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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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브레이크로 조심조심 내려가 도착한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는,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갑자기 떨어진 그리스 로마의 한 조각 같았다.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아름답긴 했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우고 잠금장치를 꼼꼼히 걸었다. 내 자전거와 동생 자전거의 바퀴를 서로 연결해, ‘들고 갈’ 마음 자체를 꺾어놓는 방식으로.


우리는 빠르게 훑고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오래 머물진 않았다. 오늘의 목표는 하나였다.


금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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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전거를 탔다. 금문교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그 길은 더욱 명확해지고, 더 자전거 친화적으로 변했다. 오른쪽에는 잔디와 풀숲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정면으로는 붉은 다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지도를 보지 않았다. 그 다리만 향해 달리면 된다.


동생은 전기자전거로 바꿔 타고서는 날아다녔다. 진짜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가슴이 뻥 뚫렸다. 푸른 하늘, 붉은 다리, 초록 들판. 세 가지 색이 너무 완벽하게 겹쳐져 있었다. 우리는 길을 살짝 벗어나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건… 너무 완벽한데?” 말이 자꾸 새어 나왔다.


금문교를 오르기 전, 방문자 센터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물을 마셨다. 동생이 화장실을 가는 동안 내가 자전거를 지키고, 내가 움직이면 동생이 지켜줬다. 이상하게 그 번갈아 지키는 시간이 ‘우리가 함께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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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금문교 위로 올라섰다.


다리 위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넉넉하게 나뉘어 있진 않았다. 보행자와 같은 공간을 쓰기에, 사람이 많으면 내려 끌고 가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일찍 움직인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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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철골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아래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그냥 건너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바람을 가르며 건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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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서 뒤돌아보았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붉은 선이 바다 위에 걸려 있었다. 그 풍경은 정말 멋있었다. 동생은 일반 자전거로 다시 페달을 밟은 탓에 힘든 얼굴이었고, 나는 그 얼굴이 괜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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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살리토로 들어갔다. 첫인상은 아기자기했다. 높은 지대에도 색색의 집들이 콕콕 박혀 있었고, 나무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었다. 바닷가로 내려가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바닷바람을 쐬었다. 땀이 식으며 몸이 가벼워졌다.



동생은 내가 정차해 둔 전기자전거를 다시 타서는 한산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신이 났다. 신나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서는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동생도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꽤나 재밌어 보였다. 잠깐의 여유 뒤, 우리는 바다 앞 식당에 들어갔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그 식당의 이름은 The Trident였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햇빛이 세서 눈이 부시긴 했지만, 바다를 앞에 두고 갈매기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씹는 순간은 확실히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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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뒤에는 소품샵도 들르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소살리토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Lappert’s 아이스크림. 사실 그렇게 당기진 않아서 콘 하나만 시켜 나눠 먹었다. 딱 그 정도가 좋았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이었다. 소살리토로 들어올 때 우리는 계속 내리막길을 탔다. 다시 그 경사를 자전거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꺾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페리.


소살리토에서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넘어가는 배가 있었다. 이미 한 대는 떠났고, 우리는 다음 페리를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4시간 넘게 움직인 몸은 페리 의자에 닿자마자 반쯤 잠이 들었다. 그래도 바깥으로 나가 잠깐 풍경을 봤다. 우리가 있던 섬이 물 위로 멀어지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쪽에 내린 뒤에도 렌털샵까지는 다시 자전거를 타야 했다. 15분 남짓이었지만 체감은 더 길었다. 오르막이었고, 특히 일반 자전거를 탄 동생이 고생했다. 우리는 “아 힘들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결국 드디어 렌털샵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나마 가벼웠다. 시간 안에 반납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오늘이 거의 끝났다는 사실이 몸을 풀어줬다.


숙소로 돌아가는 언덕 위 공원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잔디 위에 앉아 간식을 먹고, 강아지와 놀고, 연인들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공원은 Great Meadow Park at Fort Mason. 보랏빛 노을이 잔디 위를 덮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리고 걸어 발이 아팠는데도, 그 풍경 앞에서는 그 아픔이 잠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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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노을을 초 단위로 붙잡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 도시는, 나중에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지만—적어도 오늘만큼은 완벽했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공용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다리 마사지기인 플리오를 꺼내 뭉친 종아리를 마사지하며 피로를 풀었다.


오늘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나는, 이 하루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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