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샌프란시스코의 두 얼굴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시청 근처, 그러니까 다운타운 쪽으로 가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비교적 평화롭고, 관광객이 많이 모여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Fisherman’s Wharf 주변만 돌았다. 그래서 ‘도시의 중심’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몰랐다.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Tenderloin으로 불리는 지역은 노숙인이 많고 약물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여행 전부터 여러 번 들었다. 현지에서도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 곳. 우리가 가려는 유니온 스퀘어 역시 그 지역과 몇 블록 차이밖에 나지 않은 곳이라, 출발할 때부터 마음 한구석이 긴장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수록 풍경이 바뀌었다. 바다와 언덕의 여유가 서서히 사라지고, 빌딩의 모습이 시야를 조금씩 채웠다. 지나쳐온 곳은 차이나타운. 그 과정에서 우연히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폭이 좁아지며 위로 솟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 아, 여기도 샌프란시스코구나—랜드마크를 ‘찾은’ 게 아니라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유니온 스퀘어였다. 광장 곳곳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처럼 보이는 하트 조형물이 모여 있었다. 피어 39에서도 봤던 그 하트. 이번엔 마치 이곳이 본거지라는 듯, 더 촘촘히 자리 잡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는 작은 스케이트장이 있었고, 주변에는 열대 식물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드문드문 둘러서 있었다. 겨울인데도 공기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다운타운”의 기분을 내고 싶어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유니온 스퀘어 근처 나이키 매장에 들렀다. 혹시 샌프란시스코라고 적힌 티셔츠나 맨투맨이 있으면 사고 싶었다. 이 도시가 우리에게 주는 분위기가, 특별했으니까.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서 바로 Salesforce Park로 이동했다. 둥근 곡선의 외벽을 가진 거대한 건물, 창문으로 이루어진 매끈한 외관. 세련된 풍경이었다. 건물 2층에 공원이 있다는 말이 신기해, 직접 보고 싶었다.
그 공원으로 가는 길에 Waymo를 봤다. 무인택시. 운전석에 사람이 없었다. 차체 곳곳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특히 지붕 위에 붙은 장비는 빠르게 회전하며 주변을 읽어내는 듯했다. 신호를 기다리며 나는 무심코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와… 진짜구나.’ 동생과 나도 언젠가 타보자고 말했지만, 결국 이 여행에서는 타지 못했다. 그래도 관찰만으로 충분히 낯설고 흥미로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Salesforce Park에 들어섰다.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도시 위에 만든 산책로’ 느낌을 내려는 공원이었다. 길게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아래의 도로와 건물들을 내려다봤다.
그다음 목적지는 SFMO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마침 야요이 쿠사마 전시가 있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건물은 외관부터 독특했다. 마치 천이 접혀 주름진 듯한 형태의 건물. 내부에서는 현대미술 특유의 낯섦과 자극이 계속해서 나를 흔들었다. 우리는 사진으로 마음에 남는 장면들을 기록했다.
배가 고파서 Super Duper Burger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기운을 차린 뒤 샌프란시스코 시청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웅장한 돔형 건물이라 외관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문제는 그 길에서 시작됐다.
마켓 스트리트라고 불리는 큰길을 따라 걸을수록, 거리의 공기가 달라졌다. 군데군데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아졌고,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시야에 계속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몸을 폴더폰처럼 접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들 앞에서 나는 빠르게 겁을 먹었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샌프란시스코가 여기 있었던 걸까.
슈프림 매장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시청이 보일 거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더 갈 수 없었다. 인도의 폭은 비교적 좁았고, 그들을 피하려고 속도를 내는 것조차 누군가를 자극할까 두려웠다. 동생과 나는 눈빛으로 결론을 냈다.
여기서 목적지를 바꾸자.
근처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정류장 반대편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 빽빽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못 오게 하도록 통제하는 경비원이 보였다. 노란색 옷을 입고, 일정한 선을 만들어 그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 여기가… 치안이 안 좋은, 마약과 온갖 소동의 중심지 Tenderloin의 경계선이구나.’
지도에서 몇 블록 차이로 표시되던 위험 구역이, 현실에서는 분위기와 밀도로 구분되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의 양면을 그날 처음 제대로 봤다. 같은 도시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영화의 장면처럼 낯설고, 동시에 너무 현실적이었다.
버스는 더 늦게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버스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차가 움직이며 그 거리에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을 때—그제야 숨이 조금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답기만 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날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