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 2

(19) 샌프란에서의 여유로운 식사

by 윤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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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빠르게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벗어나게 되면서, 목적지를 잃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라모 스퀘어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기념품 엽서와 포스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언덕 위에 늘어선 ‘페인티드 레이디스(The Painted Ladies)’는 빅토리아풍 주택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마주한 풍경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특별하다기보다는, 이 도시의 일상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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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모 스퀘어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 아래의 그레이트 미도우 파크 앳 포트 메이슨과 닮아 있었다. 푸른 잔디 위에는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이 많았다. 공을 던지고, 원반을 날리고, 반려인과 함께 뛰노는 풍경들. 언덕 위에 서면 샌프란시스코의 일부가 내려다보였다. 뉴욕 전망대처럼 아스팔트와 빌딩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자연의 높이에서 도시의 윗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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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잘 훈련된 개들이 목줄 없이도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었다. 그 자유가 가능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자리를 잡은 듯했다. 푸른 잔디와 굴곡진 언덕, 자연이 많은 도시 환경 덕분에 그들은 더 활기차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든 목줄을 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차이는 반려견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의 마지막 코스를 마친 우리는, 낮에 시내 트레이더 조에서 장을 본 봉지를 들고 숙소로 향했다. 트레이더 조는 나에게 ‘소울 마켓’ 같은 곳이다. 뉴욕에 있을 때부터 눈에 보일 때마다 들르던 곳으로, 입구에 늘어놓은 꽃과 화분만으로도 기분이 산뜻해진다. 자체 브랜드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시즌마다 등장하는 한정 상품들은 매번 매장을 작은 놀이공원처럼 만든다. 특히 핼러윈 시즌의 호박 향 바디 제품들은 그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식품 코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가성비 좋고 맛있는 제품들이 많아 자연스레 손이 간다. 내가 유독 좋아하게 된 망고 주스는 망고 100%라 진하고 달았다. 같은 라인의 당근 주스는 동생의 최애였는데, 정말 당근 그 자체의 맛이 났다. 트레이더 조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 음식들도 우리의 식사가 되어주었다.


샌프란시스코 숙소에는 주방이 있었기에, 밀키트 형태의 음식을 자주 사서 해 먹었다. 떡볶이, LA갈비, 오렌지 치킨, 간장 베이스 치킨. 프라이팬에 간단히 굽거나 끓이면 완성되는 음식들이었고, 맛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밥이었다. 들고 다니던 햇반이 모두 떨어진 뒤, 우리는 전자레인지에 쌀과 물만 넣어 조리할 수 있는 반조리 쌀을 발견했다. 얼마나 신의 한 수였는지 모른다.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한 것 같지 않은 허기. 뉴욕에 있을 때 이 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싶었다. 여러 도시를 떠돌며 우리가 찾아낸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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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동생과 나는 프라이팬을 하나씩 맡았다. 한 명은 LA갈비, 한 명은 떡볶이. 조리가 끝나갈 즈음, 전자레인지에서 그럴듯한 밥도 완성됐다. 풍족한 식사였다. 주방에는 의도치 않게 한식의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분명 맛있는 냄새였기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몇몇 외국인들이 우리의 요리를 슬쩍 구경했고, 우리는 그 시선 속에서 묘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미국에서 한식이 그리울 때, 꼭 한식당만이 답은 아니다. 약간의 조리가 필요하긴 하지만, 트레이더 조의 한식 제품들도 꽤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다.


동생과 함께한 이 미국 여행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그 생생한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글을 쓰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날의 맛과 하늘색, 습도, 작은 에피소드들을 다시 떠올린다. 누군가가 우리의 여행에 동행해 모든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다가도, 다음 여행에서는 보조 카메라를 꼭 들고 다니겠다고 다짐한다. 매번 쉽지 않아 포기하지만, 지나고 나면 늘 후회가 남는다.


내일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벌써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못다 한 일정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설렘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함께 안은 채 우리는 숙소에서 세탁기를 돌렸다. 침대 위로 노출된 배수관에 빨래를 걸어 임시 건조대를 만들고, 그렇게 하루를 접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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