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샌프란시스코와의 작별
오늘은 샌프란시스코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골든게이트 공원에 가는 날이다.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샌프란시스코에는 골든게이트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여행 일정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은 장소였기에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유명한 공원이겠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원은 큰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시야를 가리는 요소 없이 탁 트여 있었다. 센트럴파크가 울창한 나무숲으로 감싸 안는 느낌이라면, 골든게이트 공원은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 같았다. 정돈되어 있고, 정직했다.
공원 안을 순환하는 버스가 큰 도로 위를 따라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진짜 큰 가보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앞이 훤히 보이는 평지의 길은 산책하기에도, 러닝 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어디까지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을 걸으며,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는 참 여러 얼굴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언덕, 도심, 그리고 이런 공원까지. 매번 다른 분위기로 사람을 맞이하는 도시였다.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기로 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잠시 앉아 쉬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잠시 앉아 쉬다가, 내리고 싶은 순간에 벨을 눌러 내리기로 했다.
“여기서 내릴까?”
“아니, 한 정거장만 더 가보자!”
그렇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다음 정거장에서 “지금이야!” 하며 급하게 내렸다. 계획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즉흥성이 이 공간과 잘 어울렸다.
다시 걷기 시작한 공원 안쪽에서는 작은 놀이시설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만났다. 그 한가운데에는 탁구대가 여러 대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산책로 한복판에 놓인 탁구대는, 이곳이 단순히 ‘걷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며 노는 공간’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 말고 탁구채를 잡았다가, 몇 번 공을 주고받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 모습이 유난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우리도 결국 멈춰 섰다.
“우리도 해볼까?”
핑, 하고 공이 날아가고 퐁, 하고 다시 돌아왔다. 공이 도로로 굴러가면 주우러 다녔고, 서로 웃었다. 이곳에서 탁구를 치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에 가장 가까웠다.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 함께이기에 더 쉽게 시도할 수 있었던 순간.
이후 우리는 골든게이트 공원 내부에 있는 식물원, ‘Conservatory of Flowers’로 향했다. 유리 온실 형태의 건물은 공원 안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다. 흰색 돔처럼 서 있는 모습은 이곳이 미국인지, 어딘가 유럽의 작은 도시에 온 건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식물원 앞에는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노란색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산책객들이 앉아 쉬거나, 잠시 머물다 가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남아 있는 의자 두 개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뛰었다. 다른 사람이 앉기 전에. 여유를 즐기러 와 놓고도 이렇게 급한 걸 보니, 나라는 사람은 어디서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동생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의자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등을 기대니, 그제야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햇빛은 강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의도치 않은 일광욕. 여행지에서는 이런 사소한 불편함조차 추억이 된다.
근처 벤치에서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반려견과 놀고 있었다. 짧은 다리로 공을 쫓아 달려가는 닥스훈트였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빼앗겼다. 평화롭다. 햇빛은 따뜻하고, 공기는 시원하다. 눈앞에는 채도가 높은 초록과 푸른색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는 흰색의 돔 건축물이 배경처럼 서 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마리나 디스트릭트로 향했다. 이전에 자전거를 빌렸던 장소 근처로, 바와 음식점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식당을 찾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Delarosa Marina’에 들어갔다. 마르게리타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해 간단히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던 중, 옆 테이블에서 결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꽤 큰 금액이 오가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화제는 팁으로 옮겨갔다. 며칠 전 UC버클리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현금을 따로 챙겨 팁을 준다고 했다. 카드 결제 후에 얼마가 빠져나갔는지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서 그 방법을 택한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 다행히 이곳은 팁이 포함된 매장이었다. 카드 결제 시 추가 팁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서버는 우리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었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예전에 팁 문제로 무례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 배려는 더 선명하게 남았다. 함께였기에 이런 사소한 감정까지도 나누며 기억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필즈 커피를 마시러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카페 체인으로, 민트 모히토 커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요트 클럽 근처, 푸드트럭처럼 운영되는 작은 매장이었다. 바닷가와 가까워 공기마저 달랐다.
민트 잎이 올라간 커피에서는 향뿐만 아니라 은은한 민트 맛이 느껴졌다. 처음 마셔보는 맛이었다. 다음 날 다시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9천 원짜리 커피를 아껴 마시려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컵은 비어 있었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때로는 뒤로 걸으며, 이 언덕과 푸른 잔디밭을 더 오래 기억하려 애썼다.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 도시였다.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일은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숙소에 돌아와 또 다른 설렘을 기다리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