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 2

(21) 20달러가 열어준 환상: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첫인상

by 윤예진

우리는 이제 미국의 유흥과 오락을 상징하는 불야성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다. 비행기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바깥을 내다보니 창밖으로 기묘한 굴곡의 산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지형의 정체를 사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참 이국적이다"라는 막연한 감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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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며칠 뒤, 직접 발을 내디딘 캐년 투어의 한복판에서 깨달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 예사롭지 않은 물결이 바로 이곳에서만의 경험할 수 있는 대자연이라는 걸. 비행기에서 보았던 그것들이 그랜드 캐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다시금 미국의 압도적인 땅덩어리가 실감 났다.


동생과 나는 이곳 라스베이거스에서 7박 8일이라는 긴 여정을 보낼 예정이다. 기존에는 이것보다 더 짧은 일정을 계획했었는데, 언니가 라스베이거스 좋다던데 그곳에 좀 더 있는 거 어떠냐고 해서 숙박 일정을 막판에 바꿨다. 그리고 우리는 도착 첫날만큼은 도시의 분위기를 온전히 흡수하고 싶어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익히 보아온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사인의 모조품이 우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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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숙소는 라스베이거스의 심장부에 위치한 '플래닛 할리우드 리조트 앤 카지노(Planet Hollywood Resort & Casino)'였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벨라지오 호텔의 거대한 분수 쇼를 정면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는 '분수 뷰(Fountain View)' 때문이었다. 숙소를 예약하기 전부터 나는 여행 커뮤니티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가지 팁을 수없이 복기했다. 바로 '20달러의 마법'이다.


체크인할 때 여권 사이에 20달러 지폐를 살짝 끼워 프런트 직원에게 건네며 정중하게 부탁하면, 운 좋게 더 높은 층이나 분슈 뷰의 전망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받을 수 있다는 속설. 이런 팁 문화가 실제로 통할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호텔 창가에서 보는 분수 쇼였기에, 동생과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하게 여권을 준비했다.


"체크인 부탁드립니다. 혹시… 가능한 높은 층의 분수 뷰 방으로 배정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약간의 수줍은 손으로 지폐가 삐져나온 여권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여권을 펼치더니, 이내 사이에 끼워진 지폐를 확인하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지금 남아 있는 방 중에서 확인해 드릴게요." 먹혔다.


잠시 후, 직원은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카드키를 건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동생과 나는 프런트를 벗어나자마자 서로를 보며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다. 20달러라는 돈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깜짝 선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가 방 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 그자체였다. 여태 내가 상상해 왔던 이곳에서의 풍경. 프랑스 파리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에펠탑 조형물과 화려한 열기구가 보였고, 풍경의 중심에는 벨라지오 호텔의 거대한 호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실 벨라지오 호텔 투숙객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화려한 벨라지오 호텔 건물 자체가 분수 쇼의 배경이 되어,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야말로 진정한 라스베이거스의 완성판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창가에 앉아 숨을 고르던 찰나,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벨라지오 분수 쇼의 시작이었다. 유리창에 가로막혀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수의 몸짓은 음악보다 더 선명한 리듬감을 전해주었다. 수천 개의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춤을 추다가도, 때로는 폭죽처럼 강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소리 없는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리듬감과 다이내믹한 움직임은 나를 춤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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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해가 저무는 시간이었다. 노을은 더 비현실적인 색채를 띠었다. 건물 한편에는 붉은 햇살이 스며들었고, 하늘은 화이트 톤이 섞인 높은 하늘색에서 시작해 청록, 연두, 노랑, 주황색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그라데이션을 선보였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질수록 도시의 네온사인과 분수의 물보라는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이게 무슨 행복일까."


동생과 나는 창가에 딱 붙어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동생은 그렇게까지 감흥은 없었고 내가 그러했다. 이전 도시에서의 여행이 깜빡 잊혀졌다. 새로운 경험거리가 나를 채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도시마다 이토록 공기와 분위기가 다르다니. 땅덩어리가 넓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거리가 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뜻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본격적인 체크인 전, 캐리어를 끌고 잠시 거닐었던 라스베이거스 시내의 풍경도 잊을 수 없다. 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건물들은 하나같이 누가 더 화려한지 내기라도 하는 듯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다. 명품 매장들은 뾰족하고 각진 기하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공간의 효율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건축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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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던가. 효율보다는 유흥을, 실용보다는 쾌락을, 정돈보다는 혼돈의 화려함을 택하는 것이 이 도시의 유일한 미덕이었다. 쓸모없는 화려함이 주는 가치, 그 비효율적인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이 한가운데로 불러 모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신문물을 경험한 듯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그 장면들을 새겼다. 시작부터 우리에게 가장 화려한 색채와 다채로움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우리의 여행이 또 새로운 막을 올렸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분수 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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