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시리즈 따라쓰기 <아무튼 도라에몽>

by 채은


대학 시절 나는 국어국문학도로 국어학과 국문학을 공부했다. 한국문학의 문예사조를 배우고, 수많은 시와 소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은 단연 국어학이었다. 국어학을 가르치던 이선영 교수님의 ‘현대 사회와 한국어’ 수업이 아직도 기억난다. ‘혼성어’에 대해 배우던 중이었다.


“혼성어의 예로는 ‘유느님’이라는 단어가 있죠. 개그맨 유재석과 ‘하느님’에서 나온 접미사 ‘느님’이 결합한 말이에요. 존경하는 존재를 신격화하며 높이는 말로 친근하게 쓰이고 있어요. 요즘 신조어가 정말 많이 나오죠. 이렇게 언어는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요. 저는 그래서 신조어를 아주 좋아합니다. 계속해서 확장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격하게 고양되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국어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 그 시대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삶을 반영하여 의미를 확장하고, 변화하고, 축소하기도 하는 재기 발랄한 매력. 국어는 시대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시대의 물결 위에서 서핑하는 학문이라는 점은 국문학도의 큰 자부심이 되었다. (세종대왕님 리스펙이 아닐 수 없다.)


2025년 판 <신 도라에몽> 시리즈를 보면서 나는 그때와 비슷한 고양심을 느꼈다. 어느 순간이었냐면, 신도라에몽 24기 5화 2편에서 비실이가 휠이 하나인 전동 자전거를 타며 가수 로제의 ‘APT’ 노래를 따라 부르던 순간.


“아파트 아파트 풀빌라 풀빌라! 우리집은 고급주택! 엄청나게 좋은 부잣집! 부잣집 부잣집 부잣집 부잣집~”


와씨. 나도 없는 전동 자전거를. 게다가 네가 로제를 알아? 진구와 동일하게 1960년대생일 텐데. 만화 속 세계관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 캐릭터의 나이가 그대로지만, 그들은 우리의 세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웃겨서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시대가 변하면서 애니메이션 속 물건도 바뀐다. 1970년대 초반 방영되었던 옛 도라에몽 만화에서는 나무상자 TV나 집 전화를 사용하는 정겨운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처럼 두께가 얇은 평판 TV나 태블릿이 나온다. 심지어 어떤 편에서는 도라에몽이 몇 년 전 한창 유행하던 ‘액체 괴물’을 가지고 노는 장면도 있을 정도다. 사실 이렇게 애니메이션 내 현시대 문화가 삽입되는 현상은 이상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도 문화도 기술도 하루 다르게 업데이트되고 있으니까. 장기 연재 콘텐츠로서 늘 비슷한 구조의 서사 속에 어떻게 매번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일 테다. 도라에몽 에피소드가 여전히 내게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방영 시점에 따라 현대화된다는 점은 내가 사랑하는 국어의 확장성과도 맞닿는 지점 같다.


이렇게 도라에몽이 시대를 반영하는 반면, 도라에몽 속 상상이 현대에는 실제 기술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 도라에몽에 등장한 ‘입체모형 카메라’ 같은 도구가 그렇다. 입체모형 카메라가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비실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이 부러웠던 진구는 도라에몽에게 장난감을 달라고 조른다. 도라에몽은 사진을 찍으면 3D 모형으로 만들어주는 도구 하나를 꺼내준다. 진구는 이것저것 모형으로 뽑아내다 못해 선생님의 모형을 만들어 뒤에 세워놓고 숙제를 하며 긴장된 텐션을 유지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기지를 발휘하는지. 진구의 잔머리는 정말 발칙하다.) 그런데 실제 2021년 엔비디아(NVIDIA)는 2D 이미지 한 장만 보고도, 그 사물의 3D 구조를 추정해서 만드는 AI 모델을 공개했다. 설계 후 사진을 3D 프린터에 넣으면 재료를 가지고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라. 입체모형 카메라랑 같잖아?


그보다 더 소름 돋게 한 도구는 ‘네모난 상자형 통신기’ 였다. 직사각형 모양인데 TV도 되었다가, MP3 플레이어도 되었다가, 카메라가 되기도 하는 신통방통한 물건. 바로 지금으로 치자면 ‘스마트폰’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도라에몽 단행본을 통해 이 물건을 처음 봤던 당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DMB, MP3, 카메라처럼 각각 한 가지의 기능만을 하는 물건들만 시장에 나와 있었기에 ‘우와. 이게 된다고? 그럼 아빠 차 타고 시골 갈 때 안 심심하겠네.’ 했던 기억이 난다.


도라에몽 속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밈이 생각났다. 정말 없는 게 없네. 도라에몽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과연 저자는 미래를 예견하는 예언자였던 것일까. 만화가가 아니었다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를 뛰어넘는 기술계의 거장이 되지 않았을까. 그자의 상상력은 극 효율의 일상을 만들어내는 신세대 기계에 관한 창조적 발상이었다는 점을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반백 년을 지나 도라에몽 만화 속에 나온 일부의 미래 도구들이 현실화된 것을 보면, 또 반백 년 이후에는 더 많은 미래 도구를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를테면 모두가 교통체증 없이 ‘대나무 헬리콥터’를 타고 출퇴근한다거나, ‘어디로든 문’처럼 하나의 포털을 통해 짧은 시간 내 장거리를 이동하게 된다든가 하는.


최근 온라인에서 파장을 일으킨 콘텐츠가 있었는데,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2030년까지의 인류의 미래를 예고했다는 내용이었다. 5년 내로 스마트폰이 사라지고 AI가 그 과정을 대체한다거나, 육체노동이 종말된다는 내용, 보편적인 고소득과 화폐가 사라진다는 내용 등. 물론 이 글은 일론 머스크가 언급했던 미래의 전망을 2차 가공하여 퍼뜨린 허위로 분류되었지만, 나에게 어떤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미래에는 인간 1명당 5대의 로봇이 존재하는 시대가 올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400억 대의 로봇이 활동함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정말 사실이 된다면, 미래에는 1 가정, 1 도라에몽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말인데… 나 이러다 조만간 도라에몽을 실제로 만나는 날이 도래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실제 도라에몽이 태어난 해인 2112년이 되기 전일 수도 있겠다. 장기 연애하는 연인의 새로운 점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듯, 그때까지 여전히 장기 연재 중인 도라에몽 속 미래 도구가 하나씩 물성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날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 변화를, 또 하나의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과거 인기를 끌었던 MBC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종영 이후의 미래를 전부 예견했다는 내용으로, 현재 상황과 맞아떨어지거나 그대로 되면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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