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 따라 쓰기 <아무튼 도라에몽>
도라에몽 이야기를 시작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또 다른 주인공 노진구이다. 도라에몽 에피소드의 대다수가 트러블 메이커 진구에게서 시작되고 도라에몽의 도움으로 매듭지어지는 패턴이니, 진구 없이는 도라에몽도 없다. 그만큼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 속 초등학생 5학년 노진구는 게으른 아이다. 공부도 못하고, 느릿느릿하고 운동신경이 없어 스포츠에도 젬병. 오랜 동네친구 퉁퉁이와 비실이에게도 놀림을 당하거나 맞기 일쑤고, 여자 아이들과 실뜨기하거나 낮잠 자는 걸 좋아한다. 반에 한두 명씩은 있는 만년 꼴찌 캐릭터랄까.
도라에몽 원작에서 노진구의 이름은 ‘노비타(のび太)’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작가가 의도한 의미로, ‘크게 자라라’라는 뜻. 또 하나의 속설은 일본어 ‘延びる(노비루)’에서 따왔다는 것인데 번역하면 ‘늦어지다, 꾸물거리다’라는 뜻이다. 물론 진구는 후자의 의미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매일 학교에 지각하고 숙제를 미루는 진구 모습과는 상당히 잘 매칭되는 단어 같다. 한국 이름의 뜻은 조금 다르다. ‘진솔하고 굳세게 자라라(盧眞球)’는 소망을 담아 아버지 노석구가 지어준 것인데 쉽게 울거나 어리광을 부리며,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는 여린 성격을 보면 역설적인 이름으로 보인다. 원래 이름대로 살기가 가장 어려운 법일 테다.
내가 도라에몽에서 인상 깊게 본 에피소드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신 도라에몽 1기에 나오는 ‘어린이 왕국 건설’ 편이다. 에피소드 속 진구는 도라에몽의 도구를 빌려 지하에 큰 공간을 만든다. 지하에서는 마음껏 뛰어도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는다. 진구와 도라에몽은 이슬이와 영민이, 퉁퉁이와 비실이까지 불러와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한다. 어른들이 주류가 되는 세상에서, 어린이들만의 세상을 만든다는 이 스토리는 어린 나의 동심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구의 태도 변화다. 지하 나라에 질서가 필요해지자 진구는 ‘진구 왕국’을 세우고 스스로 대통령이 된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라며 큰소리치지만, 권력욕에 취한 진구는 점점 흑화 하게 된다. 영민이를 문화과학부 장관으로 임명하더니 숙제를 보여달라고 강요하거나, 비실이를 놀이 장관으로 임명하고 장난감을 모두 복사시키는 등. 혹은 도라에몽과 친구들에게 농사를 지으라 해두곤, 자신은 여유롭게 낮잠 자며 왕실 라이프를 즐긴다. 결국 친구들은 봉기를 들고일어나고, 진구 왕국의 거대한 꿈은 무너지게 된다.
‘잘 좀 해보지…’
만화 속 주인공은 대개 착하고 뭐든 잘하는 불사조 캐릭터가 많은데 노진구는 그렇지 않다. 도라에몽의 도구를 통해 힘을 갖게 되었을 때도 착한 의도로만 행동하지 않는다. 가끔은 퉁퉁이나 비실이를 혼내주거나, 이슬이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는 나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꼭 그러다 비극적이거나 우스운 결말을 맞아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중에게 ‘발암 캐릭터다’, ‘한심하다’라는 이야길 듣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아동이 아니냐는 논의도 활발히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진구가 가끔은 답답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내 곁에 있는, 38년째 노진구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조회가 유행하던 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봤다. 나에겐 우수하고 밝은 학생이라는 그저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남편에겐 초중고 모든 기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있었다.
‘순하고 조용하지만 수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재밌고 흥미로운 것에는 집중하지만 아닌 것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얼마나 깔깔댔는지. “여보, 성이 ‘구’ 씨 아니고 ‘노진구’ 씨 아냐?” 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능성 구씨 집안사람이다.) 퍽 하면 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고, 걷다가도 코가 깨지고, 동네 형들에게 꿀밤 맞으며 자란 남편의 서사는 도라에몽 속 노진구와 정말 비슷하다. 노진구가 잠을 0.97초 만에 들어 ‘낮잠 자기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것처럼 남편도 어떤 환경에 있든 3초 만에 잠드는 축복받은 수면 시스템을 갖고 있다. 또한 느리고 운동신경 없는 둘의 유일한 특기가 동일하게 ‘사격’인 점을 보면 정말 평행우주에 사는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고성으로 갈 거야!”
근래 퇴사를 한 남편은 결심한 듯 말했다. 남편에게는 혼자 여행의 아픈 기억이 있다. 자느라 기차도 놓치고, 비행기도 놓치고, 가서는 숙소를 잡지 않아 멍하니 제주 바다 앞에서 멍 때리다 저녁에서야 숙소에 들어간 먹먹한 추억. 노진구 씨에게 여행이란 숙소에서 낮잠 자는 의미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남편은 이번에는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 결심한 듯 미니 자전거 하나를 들고 강원도 고성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남편의 진구력은 바로 나아지진 않았다. 첫날 출발 시간을 잘못 보고 버스 하나를 놓치고, 가는 곳마다 식당이 문을 닫아 이틀 내내 돈가스만 먹었단다. 미리 좀 알아보고 가지.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남편은 행복해했다. 작은 실패들 속에서도 이튿날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 산책을 하고, 바다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오는 날,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이른 저녁 방문할 일이 생겼다. 아무리 빠르게 퇴근하고 가 봐야 훌쩍 넘기는 시간이었다. 나는 고성에 있는 남편에게 조금만 일찍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남편은 여행의 달콤한 낮시간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버스 승차권을 반나절이나 당겼다.
한데, 저녁 시간 퇴근하며 전화를 걸어보니 터미널에서 1시간 떨어진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는 것 아닌가! 때는 한겨울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자전거 타고 온다고? 왜?” 이해가 되지 않아 묻는 나에게 남편은 이야기했다. “퇴근 시간에 사람들 많이 탈 텐데 내 자전거 때문에 불편해 할 수 있잖아.”
접으면 공간 차지가 많지 않은 자전거인데도, 그는 지친 직장인들이 혹여 불편함을 느낄까 피곤함과 추위를 무릅쓰고 자전거 행을 강행한 것이었다. 얼굴이 시뻘게져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는 가끔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단순 무식한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아무리 그래도 지하철은 15분이면 오는데. 아니면 택시를 타지. 계산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모습은 가끔 이해되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도 그렇다. 만나는 이들을 비밀 하나 없는 얼굴로 대하고, 친분의 정도와 상관없이 모두를 같은 마음으로 걱정한다. 자신의 약점이나 상대에 대한 마음처럼 술 한잔 먹어야만 나올 것 같은 이야기들을 백주에도 나눈다. 몇 번 얼굴을 텄다면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듯이. 이 차가운 세상에서 저렇게 여린 심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꼬, 너무 속을 보이지는 말라며 점잖은 조언을 줘 봐도 소용없었다.
묘사한 걸로만 보면 마냥 사랑 많은 박애주의자로 보이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며 ‘쌤통이다’ 고소해하기도 하고 요상하게 자신이 원할 때는 잔머리를 빠르게 굴리기도 한다. 진구가 도라에몽의 도구로 사람들을 놀릴 때 비상하게 똑똑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이 십년지기 친구가 잠수를 타 강제 손절을 당했을 때는, 친구가 자신의 문자 메시지에 답장도 하지 않는다느니, 절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겠다느니 으르렁댔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나갔다가 또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이야기했다.
“그 친구도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을 거야. 내가 먼저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고 왔어.”
만화 속 노진구는 늘 울고 혼나는 겁쟁이지만, 정작 누군가 곤란해졌을 때는 외면하지 못한다. 도리어 용감해진다. 로봇 도라에몽이 고장 나 멈춰 버리니 ‘스몰 라이트’를 통해 스스로 작아져 그 몸속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선택을 한다. 복잡한 몸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위장에 빠져 죽을 위기도 견디지만, 결국 도라에몽을 재가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늘 괴롭히고 때리던 미운 퉁퉁이가 하천에 빠질 위험에 처했을 때는 가장 먼저 뛰어가 손을 내밀고 끌어올린다. 여린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서 가능한 행동들이다.
생전 원작자인 후지코 F. 후지오는 노진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노진구에게는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반성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지금보다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또 노진구의 장인이 되는, 이슬이 아빠는 진구를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같이 기뻐해 주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있어 같이 슬퍼해 주는 사람'.
노진구와 남편의 생활기록부에는 머리가 좋다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말이 적히진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흠과 실수를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주위에 민폐를 끼치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으나, 계산 없이 다른 이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고,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여기는 건 어쩌면 가장 강하고 어려운 태도라는 걸.
여리고 느려 보여도 마음만큼은 쉽게 닳지 않는 까닭이 그것 때문일까. 성격 급하고 확실한 데가 있는 나도 때로는 느릿하고 계산 없이 행동하는 노진구 같은 이들을 참아주기 어려울 때가 있었으나, 요즘은 예전보다 더 애정 있게 바라보게 된다. 누구보다 진솔하고 굳센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