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보물섬

by 채은


도라에몽 만화책에도 번외 편이 존재하는데 바로 <도라에몽 장편 시리즈>이다. 일반 도라에몽 만화책 대여가 200원이면 장편 시리즈는 400원으로 프리미엄 등급에 속했다. 돈이 없었던 어린 나는 적은 돈으로 더 사치스러운 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저금통에서 꺼낸 오백 원을 들고 수다라글방에 들러, 장편 한 권을 품에 쏙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편은 <진구의 보물섬>이다. 옛 모험기 <보물섬>의 히스파니올라 호 대신 노진구 올라 호를 타고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도라에몽과 친구들은 항해 도중 해적에게 휘말리고, 그곳에서 ‘플록’이라는 소년과 여동생 ‘세라’를 만나게 된다. 보물섬을 만든 이는 그의 아버지 ‘실버’였다. 5년 전, 아내를 잃은 뒤 실버는 아이들과 멀어졌고, 오로지 새로운 연구 계획에 집착하게 된다. 플록과 세라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에 상처받아 방황하지만, 도라에몽과 진구를 만나 모험하며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


섬 이야기가 끌렸던 이유는 나에게 섬이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이었을까. 방학이면 먼 모험을 떠나는 노진구처럼 나의 유년기 방학은 머나먼 엄마의 고향, 경상남도 거제시 가조도로 떠나는 때였다. 남해안 육로를 통해 여섯 시간을 달리는 동안, 나는 보물섬을 찾는 진구처럼 차 뒷자리에서 지도책을 꺼내어 가조도 가는 길을 찾아봤다.


외딴섬.

지금은 가조대교가 이어졌지만 육로가 없었던 그때는 가조도에 가려면 성포항에서 ‘가조훼리’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30분 간격으로 차량도 실을 수 있었던 가조훼리는 가조도 사람들이 학교도 다니고 장도 보러 가고 병원도 가게 하는 유일한 바닷길이었다. 외조부모님 집은 선착장이 있는 섬 한 면의 유일한 집이었는데,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집 한 채와 멸치 창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뗏목과 작은 배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금빛 바다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문 열면 수평선 길게 펼쳐진 바다가 일렁였다.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오션뷰 독채 숙소’랄까. 부지런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가족들을 깨워 식사를 차려 먹이곤 양식장에 나갔다 멸치 창고에 갔다 바빴다.


그러면 낮 내내 가조도는 우리 가족 것이었다. 심심해지면 낮잠도 잤다가, 어슬렁 산책도 했다가, 물이 조금 빠지는 낮 되면 튜브를 불고 풍덩 바다에 뛰어들었다. 바위에 붙은 고동을 떼어 모으다가 수영을 했다가. 물에 불은 수제비처럼 퉁퉁 부을 때쯤 할머니랑 엄마가 홍합 한 바가지 삶아 먹으라고 소리치면, 수건으로 몸을 닦고 마루에 올라가 홍합을 까먹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배 태워주세요!” 졸라서 외할아버지 배 타고 바다 중간 양식장에 멸치들이 잘 있나 빼꼼 보고 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깜깜해진 섬길을 산책하다, 아빠랑 밤낚시를 나갔다. 남해 어디쯤에 배를 세워두고, 실낚싯대에 산지렁이 꽂아 던지면 신기하게 바닷장어들이 그렇게 물어대는 것이다. 얘네는 눈이 보이나? 무서운 줄 모르고 따라가 고기를 잡아 올릴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풍족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다음날 엄마와 할머니가 장엇국을 끓여줬다. 고동, 홍합, 고등어, 바닷장어…


평생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만드는 바다의 무한한 아량이란. 나에게 섬은, 바다에서 주는 보물을 가족들과 같이 줍고 건져 올리는 장소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오면 한동안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그리워 뿔소라껍질 두 개를 양쪽 귀에 대고 가조도의 파도 소리를 떠올리곤 했다. 벌겋게 탄 피부가 벗겨지고 새 살이 올라오기까지.


-


실버가 만든 보물섬에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사실 해적선이라는 것이다. 그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보물을 건져내는 이유는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를 실행시키기 위함이었다. 보물섬(해적선)을 끌고 다른 별로 이주하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지구의 성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결국 지구는 파멸에 이를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혼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괴감. 이미 아이들과 멀어진 사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증오. 그 때문에 아버지 실버는 파멸을 선택하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일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 곧 자녀 플록과 세라를 위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도라에몽과 친구들은 끊임없는 해적의 공격을 받으며 겨우 결계를 깨고 해적선으로 잠입한다. 그리고 아들 플록이 아버지가 만든 시스템에 접속해 프로젝트를 막는다. 결국 시스템도 망가져버리면서 실버의 야심은 무산된다.


“왜, 대체 왜!”


그토록 꿈꾸던 밝은 미래로의 진출이 좌절되자 실버는 절망한다. 아들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유토피아적인 미래 세상의 소망을 아들로 하여금 짓밟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딱 한 마디를 던진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요!”


-


외조부모님이 가조도를 떠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쯤이었다. 나이가 들며 몸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칠순이 넘으신 연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 하시던 어장을 접고, 컨테이너 집과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배를 팔았다. 부천의 어느 상가건물 위층에 집을 얻고 빡빡한 도시 생활에 적응해보려 하셨다.


블록 장난감처럼 켜켜이 위로 쌓인 네모난 건물들. 넓은 바다 대신 평평한 도로가 펼쳐진 회색 도시 사이에서 외할아버지는 뱃일하러 나갈 때 쓰던 밀짚모자 대신 경비원 모자를 쓰고 낡은 저층 아파트를 순찰했다. 할머니는 종일 창고에서 멸치 말리는 일을 하는 대신 엄마 집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다 정이 없는기라. 거제에선 천지삐까리던 것이 시장 가면 만 원이나 한다.”


두 분은 어느새 도시에 적응해 사시는 듯해 보였지만, 시골에서 두 분이서 편하게 지내다 모르는 사람들과 벽 하나 맞대고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을 답답해하는 기색이 언뜻언뜻 느껴졌다. 버스도 많고 사람도 많고 모든 게 많은데, 어딘가 부족한 듯 보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부천에서 지내시던 동안 내 여름방학은 무척 바빴다. 고등학생 때는 독서실과 학원을 오갔고, 대학생 때는 풀타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몸은 가까워졌는데도 가조도에서 며칠을 부대끼며 보내던 때보다 만나는 날은 오히려 적었다.


몇 년 뒤 방송국에 취직했다. 이름하여 막내작가. 밤도 주말도 없는 생활 속에서 나는 그대로 바빠졌다. 밤새 일하고 늦은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아직도 환한 도시의 불빛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뭐 해 먹고 살아. 벌써 이렇게 힘든데.


모든 책임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일하며 요동치는 감정도 피곤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 커져 갔다. 그때쯤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가조도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두 분이 다시 거제로 돌아간 것은 외할아버지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삶이 너무 답답하다는 까닭이었다. 늙어할 일이 없다고 해도 거제에 사는 것이 맘 편하겠다며 미련 없이 7년의 도시 생활을 청산하셨다. 물론 이전에 배도 집도 다 팔았기 때문에 가조도로 가지는 않았지만, 면사무소도 시장도 근처에 있는, 바다가 멀지 않은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그 동네엔 근처에 이렇다 할 카페도 없었지만, 도시처럼 버스가 많이 다니지도 않았지만 뭔가가 ‘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시기, 몇 년간 방송일을 때려치운 나는 절대 이것만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 휴일이 되면 거제도로 향했다. 돈 좀 벌었다고 소고기나 과일 같은 걸 잔뜩 들고 외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갈비랑 생선이랑 나보다 더 잔뜩 준비해 두고 아침부터 손녀딸이 언제 오나 기다리고 계셨다.


방에 혼자 누워있다가 외할아버지랑 티브이 보며 수다도 떨다가. 그렇게 저녁이 오면 외할아버지와 동네를 산책했다. 외할아버지는 태생 경상도 남자라 표정도 말 수도 정말 없으셨는데, 산책할 때면 젊었을 적 이야기를 잘 나눠주셨다. 수산대에 입학했다가 ‘사라호’ 태풍이 오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퇴학했다는 이야기, 다시 재입학했을 때는 엄마가 주신 월세 가지고 미친 척 등록금으로 냈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마저도 가정 형편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수협에 취직했다는 이야기. ‘그때 계속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네 엄마를 미술 대학에 보냈어야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가조도에서 여름을 보내던 어린 시절에도, 부천에서 바쁘게 오가던 시절에도, 그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나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거제에 가면 한 번씩 가조도를 다시 찾았다. 가조대교가 지어지면서 가조훼리는 사라지고, 차로도 버스로도 가조도에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관광객이 조금씩 생기는 모양이었다. 대형 오션뷰 카페가 가조도 초입에 떡하니 생기고, 펜션도 들어섰다. 예전에 외조부모님이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멸치 창고도 예전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가만히 서서 어린 시절 장면들도 떠올려보고, 사진으로도 남겨왔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어 아무런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 것 같던 곳.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이미 보물섬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었던 셈이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벌써 가나. 이렇게 빨리 가는 줄 몰랐다. 아이고, 섭섭하네.”



집으로 돌아가자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실버는 플록과 세라가 아빠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찾는 것보다 주말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먹던 프렌치토스트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단서라는 것을. 그 후 실버는 잘못된 욕망을 내려놓고, 다시 아이들이 있는 삶으로 돌아간다.


왜 우리는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왜 바쁘게 살다가 놓친 것을 후회하게 되는 걸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희망이 가득한 유토피아적 세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어른이 되며 우리는 자꾸 보물을 멀리서 찾는다. 더 큰 것, 더 반짝이는 것, 더 멀리 있는 세계를 향해 항해해야 할 것처럼 느끼면서.


하지만 내가 떠올리는 보물섬은 매캐하게 연기를 내뿜으며 망망대해로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외할아버지의 통통배 같은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항해하며 찾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 속에 있었는지도. 여름만 되면 나의 보물섬은 마음속을 둥둥 떠다닌다. 금빛 바다와, 젖어있는 튜브, 홍합 냄비가 끓던 마루.

작가의 이전글도라에몽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