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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May 23. 2023

낭만실조

낙관적 허무주의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토록 끄적거리는 것인지 물으신다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것이었다.


비인간화

우리는 자아를 갖고 깨어나 존재하며 우리와 다른 존재는 더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AI 등장으로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비인간화’라는 것이 많은 것을 상징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의 대량 생산체계로 개개인의 기능적으로 평가된 ‘기계화’, 하나의 기성품처럼 생각하는 ‘상품화’, 사회 조직의 능률을 촉진시키는 ‘획일화’,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익명화’가 그에 따른 예시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 만능주의는 인간 위 군림 인간을 기계와 같은 소모품으로 생각하여 인간의 윤리나 도덕성을 문제로 야기하며 인간애 가치추구와 실천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지위, 권력, 자본력 등이 주요한 삶의 목표가 되게 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거나 추구할 외적 가치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기준을 만들어내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사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모순 아래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허무주의

인간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물(物)적인 사용가치로만 따지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는 인간관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느낀 과정과 감정에서 잦은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꼈고 이를 물(水)과 닿아 묽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비(悲)인간 시리즈 준비중

낙관적 허무주의

의미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구체적인 형상이나 사실적인 묘사가 되어 주를 이루기보다 서로 뒤엉켜 회화로 연결된다. 이는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겪고 보이는 버려지는 것들, 소외되는 것들, 경험한 것들 일 수 있다.


결국에 다 사라지게 될 이 모든 것들은 다소 허무할 수 있지만 ‘가치’가 있었고, 이를 통해 인간으로서 욕구를 환기한다. 가치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낭만을 품고 있다.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고 싶은지 구상할 순 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관찰자가 되어 낭만을 발견하고 일상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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