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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Aug 01. 2023

나도 열 마디 하고 싶었다.

이 씨, 그렇게 살지 마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내 속에 한가득이었다. 당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신이 나에게 무례하게 했던, 기억도 다 하지 못할 만큼의 잘못들을 탈탈 털어 당신의 발밑에 버려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이 당신의 잘못에 파묻혀 그 속에서 죽어버리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 죽음조차 당신에겐 감지덕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이다. 쉬는 날이 필요한 사람이다. 일하는 날 쉬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일요일 쉬는 것이 당연한 날 쉬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러나 쉬는 날 쉬는 것은 열정이 부족하다며 정신이 썩었다는 핀잔만 들었다. 머리는 폼으로 얹고 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그 밖에도 당신은 여러 이야기를 한 것 같았지만 한 마디도 더 내 마음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난 그저 이번 일요일도 쉬지 못한다는 것에 너무도 실망한 까닭이었다. 


나의 열정은 늘 당신에게 평가당한다. 나도 열정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모르는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당당히 이곳을 떠나고 싶은 열정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주제에 늘 내 열정을 평가하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다. 나의 열정이 당신과 방향이 다르다 하여 언제나 평가절하 당하고 없는 듯 취급당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비록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도 내 일에 있어서 게으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고 쉬는 날 쉬고자 하는 행동은 썩어빠진 정신력이라 한다.


당신과 같이 밥 먹기 싫었다. 직원들이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당신과 밥 먹는 것을 아는가? 밥은 일하는 노동자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자 시간이다. 그 시간마저 빼앗은 당신은 진짜 못됐다. 밥 먹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했던 일들을 일일이 지적하는 소리를 들으며 하는 식사는 밥 알이 내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  쉬지 않고 내 잘못에 대해 떠드는 당신의 입에 밥그릇을 통채로 집어넣고 싶었다. 제발 밥 좀 먹게 해달라고. 


이것은 회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식 시간은 자아비판 시간이었다. 아니, 공개재판에 가까웠다. 동료들과 다른 직원들 앞에서 까발려지는 나의 잘못들은 회식에서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되는 사항인지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한 사발 욕을 퍼부었다. 역시 마음속으로 한 것이라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한 까닭인지 눈치 없는 당신은 회식 분위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냉각시켜 버렸다. 회식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당신이 원하는 싸고 양 많고, 자신 때문에 이런 먹거리를 경험이라도 해본다는 생색과 함께 먹기 싫은 음식들을 정말 구경만 시켜준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자신이 나에게 지시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일을 다시 지시했을 때였다. 그때는 나도 화가 나서 당신에게 조목조목 증거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역시 소용없었다. 마지막으로 지시한 것이 진짜 지시였다면서 그런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 없는 직원으로 당신으로부터 태어나서 들어보지 못한 욕을 들었다. 


나는 능력이 부족한가 보다. 나는 멍청한가 보다. 나는 겁이 많은가 보다. 나는 세상이 무섭다. 직장 상사가 무섭다. 이런 거지 같은 직장이라도 있어 밥을 먹고 산다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증까지 왔다. 그럼에도 탈출이라는 해답에는 이르지 못하는 바보였다. 열심히 일했지만 존중받지 못했다. 동료들도, 상사도 나를 무시했다. 그들이 그렇게 대해도 내가 나가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말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다. 생각할 줄 알고 무엇이 옳은지도 알고 모든 부당함에 대꾸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바보의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이미 오래전 첫 사회생활 시절에 나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었다. 그러나 그다음, 그다음에 직장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때보다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것은 다 그냥 넘길 만큼 강해졌다. 그리고 부당함에 저항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저 경험이 주는 유일한 장점이랄까? 하지만 만일 내 동생이 저런 경험을 앞으로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고 한다면 절대 말릴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거친 바다가 노련한 뱃사람을 만든다고 해도 조금은 인각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고생을 해도 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신입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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