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의 계급 차이

어쩌면 쓸모없음을 착각하며

by zejebell

오늘도 운전을 하다 보면 행여나 스치기라도 할까 무서운 차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차들을 보면서 이미 여기저기 상처가 많지만 마음은 편한 내 차에 감사함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나 보던 차들을 도로에서 많이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저런 차들을 모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들일까? 얼핏 보기에도 운전자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전혀 부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또 진심으로 부러운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자동차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도로 위에서만큼 적나라하게 서로의 계급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자동차만 한 게 없다.


요즘 SNS, 미디어 등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성공(특히 돈), 경제적 자유, 조기 은퇴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이 유행처럼 번져서 그것에 동참하기 위해 서로서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과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하는 영상이나 글도 볼 수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는데 양반, 상놈의 단어만 없어졌을 뿐 어떤 기준으로 나뉜 계급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죄라는 말은 언뜻 듣기에 노력을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계층의 사다리를 하나라도 더 오르기 위한 열망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현재 유행하는 이른바 ‘경제적 자유’를 이룩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과거 그것이 ‘유한계급’을 바라보는 시선과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음을 아는지 궁금하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힘의 열등함을 보여주는 표시였고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본질적으로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만큼 여가가 있다는 것은 힘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또 자신이 그런 천박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경쟁자로 생각한 사람보다 자신이 뭔가 하나라도 더 나은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삶이 만족스러워진다. 이런 만족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사람은 어떤 계층에 속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계급 사회가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급이란 사회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나 비슷한 수준 아래 놓여 공통된 이해관계와 행동 방식을 지니는 집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사실 이상하거나 특별한 일은 아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세습을 통해 계급이 이어져 계층 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종류의 능력으로 계급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것이 평판일 수도 있고 패션일 수도 있고 인기일 수도 있고 외모일 수도 있다. 라이프 스타일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힐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유행이 휩쓰는 그 시기마다 더 힘이 쏠리는 곳을 기준으로 상대방의 계급을 평가한다. 마치 자신은 상대방을 평가할만한 계급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자신도 곧 원하는 계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 자신만만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큼 계층 간의 이동은 전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가 그 증거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불행은 부자나 권력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재나 바보를 구별하지 않고 찾아간다지만 찾아온 불행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신이 어떤 계급, 계층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TV에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세계에 몇 대 없는 획기적인 기계를 소개하는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그 기계를 사용하는 비용은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버거운 수준이었다. 당연히 암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겠지만 당장 그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음 역시 가난한 자와 부자에게 더 이상 공평하지 않은 것이 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과학 기술과 문명이 점점 더 발전하면 할수록 과거에 그나마 공평했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회 계급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가진 자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어디쯤엔가 어정쩡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사실은 하층민일 가능성이 더 높은) 나는 또 다른 자신과 비슷한 당신과 계급의 사다리를 놓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의 계급은 사실 아무 힘도 없는 개미 눈곱만 한 차이일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차이를 위해 오늘도 있는 힘을 다해 당신과 나는 노력하고 버텨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를 것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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