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분노를

정의로 포장된 폭력

by zejebell

요즘 뉴스에 보는 것이 무서울 지경이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분노에 차 있는지 혼자서 자신의 분노를 잠재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분노를 정의의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죽어간다.


공권력은 그 의미를 상실해 가는 것 같아 보이고 자신의 억울함은 풀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도대체 자신의 정의를 실현시켜 줄 영웅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국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한 그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정의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이 사회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고 어지러워지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자신이 정의롭지 않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자신만의 정의로운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스스로 결정을 내려 버린다. 현재 자신이 원하는 ‘정의’는 자신의 분노를 풀어줄 수 있는 적절하고도 충분한 명분이 되어주는 최상의 공격 무기인 것이다.


사실 정의는 분노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히 나의 정의와 당신의 정의가 통하게 될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분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가 정의로운 것임을 인정받기 위해 인터넷에 자신의 상황을(겁도 없이) 올린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들의 판단으로 참 교육 내지는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찾아야 할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정의의 이름아래 분노만이 그들을 뭉치게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실수, 무지로 인한 잘못, 혹은 반성하고 아직은 돌이킬 수 있는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비난의 화살을 주저 없이 날린다. 이유가 어떻든 일단 잘못은 잘못일 뿐이라는, 자신들은 하나의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마냥 눈앞의 정의를 실현시키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필요이상의 분노의 불길을 내뿜을수록 스스로를 정의롭게 느끼는 생각에 점점 도취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버린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받아 마땅한 또 다른 대상을 찾아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의감에 불타오르게 된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 불평등한 대접을 받았던 기억, 악인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듯한 현실은 우리를 정의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개인이 못살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 것은 언젠가부터 개인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렸다. 자신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할수록 사회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의는 점점 변질되어 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본질은 없어지고 현상만이 남아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리주의는 민주적인 제도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요구 사항인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로서의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부정의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는 게 된다.”

<정의론/존 롤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 예전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이렇게 자주 이 사회에서 인용될 줄은 그때 당시엔 몰랐었다. 이 철학 이론으로 인해(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오히려 약자들과 소수의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존중받지 못한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약자이다. 대다수의 행복과 이익이라는 이유로 이제까지 참아온 약자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빼앗긴 정의를 다시 되찾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다들 결심한 듯 보인다.




“허용도가 낮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못마땅한 사람이나 일들이 항상 눈에 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기준이 뚜렷한데, 기준이 높다 보니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협소하다.”

<정의감 중독 사회/안도 슌스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 다른 시선을 가진 집단과 개인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 하지만 본성과 본능대로만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자신이 인간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이다.


자신의 분노가 잘못된 사람, 원인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분노가 과연 정당한 분노인지 다수에게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의로움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정의의 이름으로 소수 사람들과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자신의 정의를 공정함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의를 방패로, 분노를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방향이 잘못된 분노는 우리의 적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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