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뭔지 모르며 혐오하는

나쁜 것이에요.

by zejebell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편을 만들어 그 무리에 속하는 안전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인간이 점점 문명화되기 시작하고 모든 산업과 문화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만 가는 이때에도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인간은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혐오를 없애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다른 누군가를 증오하는 방법, 혐오의 확산은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유용하며 특히 혐오는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운명에 의해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차이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닌 환경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성장하면서 배움의 정도에 따라 각자 다름이 부여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그런 것들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다.


그렇게 있다가 뭔가가 이슈가 되고 촉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사회는 뒤집어진다. 친절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우리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잘 알았던 어떤 사람이 공공의 적이 되어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찾는데 혈안이 되고 어떤 이를 단죄하는데 신이 난 것처럼 갑자기 모두는 공정한 판사 노릇 하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를 사회의 통념적인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가진 표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어떤 행동으로, 어떤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비하당하거나 차별당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은 공공연하게, 거리낌 없이, 예의가 아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상대방도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혹은 잊어버리고 혐오를 표현한다. 한껏 고상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가장하고는 정작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악의와 증오로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토마스 제퍼슨을 떠올려보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독립 선언서를 쓰는데 일조한 그는 600명이 넘는 흑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을 노예로 부렸다. 그는 자신이 쓴 글과 행동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자유로운 흑인들에 대해 ‘사회의 해충이며… 어린아이들처럼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샐리 콘>



때때로 이런 행동들이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일탈일 뿐이며 사회에서 변화되어야 할 시스템적인 노력은 불필요하다고 단정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정치인들, 사업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혐오와 증오를 어떻게 퍼뜨리려 하는지 많이 경험해 왔다.)


그러나 혐오의 문제는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듯 보인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언뜻 보기엔 개인적으로 서로 대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까 입을 다물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표준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정의의 사도’들은 그들의 정의로운 심판을 조금의 자비도 필요 없다는 듯이 자신들이 아는 것이 전부인양 휘두르기에 정신이 없다. 적어도 자신들이 혐오하는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과연 우리는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가 혐오하는 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들이 맞는가? 그들을 혐오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닌가? 누가 나에게 그들을 혐오할 권리를 주었는가?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쉽게 선동당한다. 혐오스러운 그 무엇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밀어내기도 한다. 혐오스러운 것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혐오의 해부) 혐오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으로 더럽고 수준 낮은, 그러나 누구나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혐오는 전염성이 강하다. 혐오는 통제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기준을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만들 수는 있다. 어떤 사람이든 간에, 설혹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의 의견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존중을 보여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그가 한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미워하고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고 미워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실수하면서 배우고 잘못을 통해서 후회를 느끼고 잘못을 되돌리는 방법을 배우며 더 나은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지금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다시 되돌리고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높게, 다른 사람을 혐오해도 괜찮을 만큼 낮게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잘못도 없는 그저 혐오스러운 인간을 미워하기만 하며 되는 게으른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것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철학적 사고는 언제나 빠져있고 누군가에게 혐오의 감정으로 이용당하는 개, 돼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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