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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Jan 21. 2022

본능과 예민

엄마의 장광설

3.  어릴 때 그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정말 궁금한 것은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졸리면 자고 뭔가 하고 싶으면 주변을 돌아보거나 상황에 대한 판단 없이 행동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오늘도 그대는 원시인! 본능에 충실한 몸뚱이의 소유자! 어쩜 작은 아들이 그대를 쏙 빼닮은 것일지도...



이불 밖은 위험해!



4. 이렇게만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생각하고 뭔가 해보려 했는데 작은 아들이 왔다. 어지럽고 졸리고 24시간 멀미가 난다. 모든 사물과 공기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난 내가 미쳐가는 것 같았다. 그냥 물도 마시기가 힘들었다. 가장 힘든 건 공기의 냄새였다. 냄새를 안 맡으려 숨을 쉬지 않을 순 없으니까... 누워도 일어나도 힘들었다. 지금 세대에겐 믿기 힘들겠지만 이때는 스마트 폰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난 누워서 벽지의 모양을 수없이 세었다. 티브이도, 책도 어지러워 볼 수가 없었다. 난 중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걱정인 건 작은 아들이 정말 예민한 아이로 태어날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5. 그대는 월 자꾸 미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룬다. 시간은 계속 지나고 저절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대는 지나가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잔소리가 늘어가는 악처가 되어간다. 그럼 그대는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미뤄진 일들은 눈덩이가 되어 서로서로 뭉쳐져 커져버리고 마침내 그대는 힘들게 눈덩이들을 치운다. 그러나 없는 시간 서둘러 치운 탓에 깨끗이 치워지지 않았고 다시 시간을 들여 치워야만 한다. 나는 다시 악처가 되었고 그대는 소크라테스 대신 귀머거리가 되길 택했다. 나는 작은 아들이 태어나기 전 그대가 좀 달라지길 바랬을 뿐이었다. 나의 잘못이다. 나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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