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과도 소통하고 싶어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별로 친한 분은 아니지만 서로 먼 거리에서 가끔씩 인사와 안부를 묻는 정도의 딱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있는 보기 드문 지인 중 한 분이었다. 서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냉랭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분이었다. 여전히 그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는 한데 그분의 마음은 내 마음의 거리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대뜸 요즘 국내의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나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성향(그분의 평소 행동과 말씀에서는 전혀 그런 정치적 성향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어서 놀라기도 했고, 이렇게 민감한 주제를 왜 나에게 주저 없이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어떤 부분에서 그쪽 정치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셨을까?
사람들의 생각은 가끔 우리의 짐작을 벗어날 때가 있다. 대부분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프레임 안에 그 사람을 가두어 놓고 보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종의 편견에 가로막힌 생각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지식인, 정치인들을 지지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렇기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나누고 살아가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들은 궁금하지 않다.
때로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과 부딪치게 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공격성이 생기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만 둘러싸인 환경을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에 대한 조그만 연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생각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어쩌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자신과 비슷한 무리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 단계의 성장을 위한다면, 자신의 생각 수준이 유아기적을 벗어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제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무리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대화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내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그런 시도와 노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다른 생각, 다른 세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비슷한 생각 몇 가지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것에 만족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신다. 사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싸움도 나고 전쟁도 나는 것이 아닐까? 다름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먼저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세상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와 다른 생각을 한 번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의 생각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더 좋은 생각을 찾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이 현재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한 단계 더 수준을 높이게 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한평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런데도 인생을 살면서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이 궁금하지 않을까? 갈등과 혐오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가치 없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평생 변하지 않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생각에 갇혀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만으로도 버거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알게 된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예상치 못한 환경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낯선 것은 불편하고 두려울 수도 있지만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함으로써 정해지게 된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정하고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요즘 시대는 정말 적응이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오늘은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에 적응해 가고 있으신 것처럼 나는 새로운 AI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가르치거나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은 나와 다른 그들을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